42산 양주 불곡산(2021년 11월)
도적인가, 의적인가.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에는 임꺽정이 의적이 아니라 단순한 도적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문정왕후의 섭정으로 외척의 세력이 등등하고 사대부의 횡포가 백성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던 시대였다. 갈대를 꺾어 일용품을 만들어 팔아 근근이 살아가던 임꺽정은 갈대밭을 사유화한 양반 때문에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웠다. 폭력을 사용해 남의 물건을 빼앗았다는 사실은 잘못이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 아닌가. 힘없는 백성은 같은 처지인 임꺽정이 얄미운 양반을 조롱하듯이 약탈하는 모습을 보고 후련했을 것이다. 나라에서는 임꺽정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가짜 임꺽정이 나타나고 도적은 신출귀몰했다. 치밀하게 수색해도 오랫동안 잡히지 않았다고 하니,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백성들이 숨겨 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임꺽정은 의적이 아닐까.
조선 3대 도적(홍길동, 장길산) 중 하나인 ‘임꺽정의 난’은 1559년(명종 14)에서 1562년(명종17) 1월 황해도를 중심으로 일어났지만, 그는 양주 불곡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양주시는 지금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다. 양주역 부근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양주시청 근처에는 전철 연결 공사가 칸막이 속에서 진행 중이다. 번드르르한 양주시청 건물 뒤로 불곡산의 들머리가 있다. 시작하는 구간은 아주 평이하다. 계단이거나 경사가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창 공사중인 양주시처럼 밋밋한 동네 산은 고개를 두어 개 넘고 나면 달라진다. 어린 임꺽정이 불끈불끈 솟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뛰어다닌 바위산이 나타난다. 올라서는 봉우리마다 동서남북으로 파주 감악산이나 북한산 같은 유명한 산이 다 보인다. 그래서인지 삼국 시대부터 이 산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개를 넘어설 때마다 숫자를 하나씩 붙인 9개의 보루가 있다.
험한 바위에는 쇠못이 단단히 박혀 있거나 철제 계단이 있어서 조심하며 올라가면 위험하지 않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오래된 돌의 기운을 느끼면서 천천히 걸었다. 마사토 같은 자잘한 돌이 깔려 있거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길보다 바위 위를 걷는 편이 오히려 편하다. 하지만 나중에 멀리서 찍은 사진 속의 우리는 매우 위태로워 보였다. 발끝으로 걸어서 바위 사이의 풀을 뜯어 먹는 산양처럼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상봉을 지나자, 암산의 면모가 더욱 웅장하게 드러났다. 갖가지 형태의 기암괴석이 연이어 나타났다.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당사자는 무엇을 그렸는지 알고 있다’라고 했다. 태초에 자연은 바위를 만든 의도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다. 인간의 미약한 상상력으로 이름을 붙인 펭귄 바위, 생쥐 바위, 악어 바위, 복주머니 바위, 공깃돌 바위가 암벽을 건널 때마다 전시장의 조각품처럼 하나하나 나타났다.
산행 친구들은 바이러스 위력이 잠잠해지고 모처럼 모여 산행할 수 있어, 또 재미있게 생긴 돌을 쳐다보며 한껏 상기되어 웃고 수다를 떨었다. 괴이한 바이러스가 나타나 암울했던 시간을 견뎌내고 돌아올 수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바이러스 덕분에(?) 함께 등산하고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대교 아파트 쪽으로 내려와 양주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창밖으로 상봉, 상투봉, 임꺽정봉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보여 다시 임꺽정이 생각났다. 의적인지 도적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운 열정적인 인간이었다. 정체 모를 사악한 바이러스와 대항한 우리가 그러했듯이.
"꺽정이는 참말 인물입니다. 꺽정이는 선성 듣던 것 보다 사람이 더 났습니다. 그 사람이 미천으루 말하면 백정의 자식이건만 딱 대면하구 보니 백정의 자식으로 하대할 수가 없습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 중 형제 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