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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Nov 13. 2019

방송가 불온서적이 꿈입니다

앞으로도 불온해 보겠습니다 


내 생의 지난 5년간 궤적을 시간 순으로 배열해본다. 꿈을 찾아 프리랜서 방송작가가 되고 몇 번 다른 방송국으로 옮긴 뒤 계약 해지를 당한다. 그런데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니 방송계 프리랜서로 살면서 비슷한 일 겪어보지 않은 분 찾기가 더 힘들다. 흔한 얘기였다. 


‘흔한 해고’를 당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 역시 멘붕 속에서 허우적댔다.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원망이 자책으로 바뀌던 때였다. 잘린 원인을 찾다 찾다 결국에는 ‘내가 오죽 못났으면’, ‘능력 부족이라서’ 이런 말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 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기로 했다. 자책을 그만하고 싶어서 글쓰기 창을 켰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창을 닫았다. 많은 이들이 봐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해독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3주 만에 처음으로 날숨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헤매다 만난 은유 작가의 말 한마디


해고담을 올리고 며칠 뒤, 친구가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 출간 기념 강연에 초대해 주었다. 고민이 많은 때였다. 강연에서 은유 작가는 ‘한탄과 한숨, 자책, 울부짖음 같은 억압된 목소리를 모아보라’고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그녀의 말처럼 글을 통해 ‘설명되지 않는 것을 설명’해보고 싶어졌다. 


내 안의 ‘설명되지 않는 것’들은 몸담았던 업계에서 만난 부조리였다. 고작 5년을 방송계 집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는 매일 이런 사람들을 보았다. 노동과 수입의 인지부조화로 한탄하는 이들을 보았다. 언제 거리로 나앉을지 몰라 한숨 쉬는 이들을 보았다. 사흘 째 잠을 자지 못했다며 눈물 흘리는 이들을 보았다. 하루아침에 잘리고도 자책을 하는 이들을 보았다. 보기만 했다. 나 역시 그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는 작은 나사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한 번 눈에 맺힌 광경은 쉽게 잊히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삼킬 수 없는 질문이 자랐다. 


5년 간 보고 듣고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기로 했다. 상근 하는 프리랜서라는 말의 모순을, 급여가 아닌 ‘페이’라는 단어에 담긴 속뜻을.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성을 부정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가 회한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물음표라도 던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왕 은유 작가의 이야기를 했으니 하나 더 인용하자면 그녀가 쓴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러하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진실로 그랬다. 방송계 프리랜서들이 겪는 일을 쓰면서 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졌다. 자책 대신 사유를 시작한 덕이다. 내가 바뀌니 세상과 문제도 다르게 읽힌다. 시작은 순전히 나의 해고담이었지만 점차 타인의 이야기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내게서 시작된 이야기가 타인의 이야기로 확장되던 순간들


지난달에는 공중파 방송국에서 하루아침에 구두로 해고되고 1인 시위를 진행하던 A 작가에 대한 글을 썼다. 다음날 눈을 뜨니 그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직접 만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해주고 싶었다. 무작정 1인 시위 현장으로 찾아갔다. 낯설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에게 “작가님... 힘내시라고 왔다. 저도 그 마음 안다”는 말을 겨우 하고 눈물이 터졌다. 우리는 잠깐 울고 길게 이야기하고 함께 따뜻한 밥을 먹었다. 최근 그녀는 사측과의 교섭을 통해 다시 복직했다. 1인 시위를 통한 최초의 방송작가 복직 사례 아닐까 싶다. 


세상이 느리지만 변하고 있다. A 작가의 최초 복귀 사례가 그 증거다. 나는 나의 해고도 아니지만 슬퍼했고, 나의 복직도 아니지만 뛸 듯 기뻤다. 이 업계에 수 백 수 천의 A 작가가 있음을 알아서다. 그녀의 과거는 우리의 과거고, 그녀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다. 나는 글을 통해 그녀와 연대했고, 앞으로도 글을 통해 수많은 A 작가들을 응원할 생각이다. 


내가 쓴 말들이 방송국 안에서 홀로 방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불온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기쁘겠다. 시점에 따라 더없이 불편하거나, 한없이 위안이 되길 바란다. 애당초 모두에게 편안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해고에서 시작해 불온함으로 끝나는 이 흐름이 나는 퍽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 까지는 불온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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