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KBS TV동화 행복한세상 <어머니와 속옷> 편
어머니 뇌수술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신 지 103일이 흘렀을 때다. 두통으로 큰 병원 응급실에 걸어들어가 혈압을 재던 중에 뇌출혈이 발병해 의식을 잃으셨다. 두 군데 병원에 옮겨 다니며 긴급한 수술이 시행되어야 할 타이밍에 수술이 거절되어 골든타임을 놓쳤다. 상대적으로 작은 병원에서 수술하긴 했으나 '기다려 봐야 안다'고 한 의사의 말에 100일 넘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슴 찢어지는 일들이 계속 생겼고, 수많은 시간을 어두운 터널 안에서 홀로 지내며 괴로움을 견뎠다.
너무나 길고 추웠던 그 겨울 동안 여섯 장의 수건을 날마다 하루 네 번씩 빨고 삶았고, 사골을 끓여 중환자실에 면회를 갔다. 억울한 심정의 괴로움을 해결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병원을 옮기고 한방치료까지 겸하고 있지만 차도는 없었다. 왜 이런 고통이 내 인생에서 필요한 걸까? 난 욥처럼 의롭지도 않은데. 내가 죄인인 것을 알지만 너무 혹독한 이 삶이 버겁기만 하다.
인생의 고난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평생 선하게 가족들을 섬기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힘들어도 웃는 모습 보여 주시며 꿋꿋이 견뎌 오신 어머니의 삶을 가까이서 보아 왔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 어머니가 지금은 등에 욕창이 생기지 않을까 늘 염려해야 하고, 음식도 호스로 넣어드려야 하고, 호흡도 목의 기관을 절개하여 가는 선으로 산소를 공급하며 수시로 끓는 가래를 석션기로 뽑아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내가 건강해서 어머니를 돌봐드릴 수 있다는 것, 내 손으로 어머니를 닦이고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지쳐 있고 힘든 상황일 때, 기분 전환하라며 옷을 선물로 사 주시곤 했다. 4학년에 오른 봄에 건축공학 졸업 작품과 기사 시험 준비로 분주하고 헉헉거릴 때 백화점 한 번 같이 가자고 하셨지만 시간을 내지 못했다. 집에도 거의 못 들어오고 학교 부근 자취방을 얻어 설계 작업실로 만들어서 시간을 아껴 쓰고 있었다. 기사 시험 1차에 떨어지고 낙심해서 집에 왔는데 나는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의 멋진 디자인의 새 옷들이 여러 벌 책상에 놓여 있었다. 기사 시험 떨어진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도 기운 내라고 엄마가 선물로 사 주신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감각적인 안목으로 다음 시즌에 유행할 옷을 척척 입을 수 있었다. 베스트드레서란 소리도 종종 듣는다. 늘 그렇게 내게 뭔가 기운 없는 일이 생기면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가슴 설레는 선물을 안겨 주셨다. 고맙다는 말을 드리려 해도 잠깐 주무시고 광장시장에 나가시느라 우리 모자는 말없이 통하는 사이였다.
보디가드 브랜드의 꽤나 멋진 속옷도 그중 하나다. “공부도 못하고 기사 자격증도 못 따는 아들이 뭐 좋다고 이런 좋은 것들을 사줘요?” 하면 어머니는 반달 모양의 눈으로 웃으시며 이렇게 말했다.
“공부 잘한다고 아들이고 공부 못 한다고 아들 아니냐?”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지낼 수 없던 100일 넘은 투병 시간 동안 그분의 부재를 집안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청소, 빨래, 설거지를 스스로 해결해 오면서, 일인다역을 해 오신 그분의 손길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얼마 전부터 내 속옷이 너덜너덜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 손으로 사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경희의료원에서 회기역으로 가는 도중 보디가드 매장에 진열된 속옷들을 보았다.
첫날밤 입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 보이는(그 와중에 이런 생각을 다?) 속옷 세트를 보니 어머니가 옆에 계셨더라면 분명 바로 저 디자인을 사주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서글퍼지면서 울음이라도 터질 것 같아 구경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그런 비싼 속옷 입으려 하지 말고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집에 와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을 열어 뒤지는데 상단 수납대에서 속옷 세트 상자를 발견했다. 보디가드 속옷 상자였다. 열어보니 놀랍게도 내가 아까 매장 진열대에서 본 것과 꼭 같은 것이다!
어머니가 건강하였을 때 그 속옷을 미리 사서 내 옷장에 넣어두신 것이다. 당신 눈에도 그 디자인이 무척 좋아 보여 내게 입히고 싶으셨던 게다.
가슴속에 눈물이 고여서 넘치려 한다.
지금도 나는 봄이 오면 스타일리시하고 저렴한 옷을 한두 벌 산다. 설렘이 없다는 건 나이 듦과 의욕 없이 사는 것과 같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다시 시작하는 삶의 기분을 얻을 수 있고, 새로움의 시간에 아직은 오지 않은 삶의 기쁨을 발견하고 싶다. 내 기억 속에는 처음 병실에 계시던 그해 봄 낯선 어머니의 부재에서 발견한 속옷 세트의 감동과 슬픔이 남아 있다. 그리고 고독하고 힘든 삶에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멋진 모습으로 살고 싶다. 어머니께 옷 선물을 받아 감정이 화사해지고 사랑을 느끼던 그 청춘의 기억이 스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KBS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내 책 <어머니는 소풍 중>의 "보디가드 속옷에 흘린 눈물"을 각색하여 "어머니와 속옷"이란 제목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방송했다. 우리 모자의 모습과 따뜻한 대화 그리고 이금희 아나운서의 다정다감한 내레이션으로 함께하니 가슴 찡한 아픔과 감동이 더해졌다. 새로 글을 쓰면서 이전의 글이 다른 콘텐츠의 원소스가 되어 있는 것이 즐겁다. 이 애니메이션을 간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제 속옷조차 내 손으로 사 입어야 하는구나"는 좀 오버이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때 그 심정이 잘 들어가 있다.
내가 나눈 글의 대화가 동화의 모습으로 다시 각색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항상 동화처럼 맑은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병원에서 퇴원 명령을 받고 집에서 어머니 간호한 지 몇 해가 지났을 때다. 매일 고단한 일상은 내게 당연하고 견딜만한 일상이 되었다. 24시간 긴장의 나날에서 잠깐 휴가를 얻듯 외출하는 날은 주일에 동생과 어머니 간호를 교대하고 잠깐 교회에 갈 때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낮 예배와 모임은 항상 휴가를 떠나는 것처럼 힘이 난다. 가끔씩 쓰는 폴로 향수도 살짝 뿌리고, 교회 갈 때만 입는 바지를 꺼낸다. 지난주와 겹치지 않게, 그리고 날씨에 맞게 재킷을 골라 입고 집을 나서는 순간 군대에서 교회에 가던 기분과 꼭 같아진다. 나를 가장 위로하는 시간이 교회 가는 버스 안에서 찬양을 듣는 시간이다.
마침 성찬식이 있었다. 성찬식 직전에 도착할 수 있어서 주님의 살과 피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예배를 할 수 있었다. 내게 떡과 잔이 오기 전, 눈을 감았는데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고 눈물이 흘렀다. 감사하다기보다는 서러운 마음, 섭섭한 마음이 조금 들었으나 차마 따지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주르륵 몇 줄기 흘리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개운해졌다.
하루하루 잘 견디고 있지만 내 믿음의 문제이다. 내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이 모든 세상의 막이 끝날 때 기립박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서운함, 현실의 막막함 모두 미래의 영광 앞에서 빛이 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다시 싸움터로 출전하는 용사처럼 갑옷을 두르고 투구를 쓴다.
외박하고 들어오신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심정의 무기력감으로 온종일 이불 뒤집어쓰고 계신다. 나 대신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힘들었던 동생은 지친 표정으로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린다. 동생은 어머니 가게 일을 하느라 밤에 일어나 동대문 광장시장에 나가야 하니, 내가 어머니 걱정 없도록 최대한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아들의 손이 잠시 떠나 있던 시간에 어머니는 불편한 표정이 역력하다. 시트를 잡아당겨 펴드리고 몸을 위로 세워드리고 등을 두들겨드리고 팔다리 관절을 풀어드린 뒤에야 편안한 표정이 돌아오신다. 시트가 오물로 엉망이 되어 있어 동생에게 또 화를 내었다. 간호에 꼼꼼하지 못한 여동생에게 향하는 나의 짜증. 동생의 삶도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내 표정은 쉬이 어두워진다.
용납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것이 있는데 바로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모든 걸 이해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무안하고 부끄러워진다.
그래……, 아무렇지 않다.
괜찮다!
월요일 아침이다.
괜찮다!
많은 일들이 버겁게 기다리고 있지만,
괜찮다!
저녁엔 예비군 훈련 때문에 어머니 간호를 잠시 맡길 사람을 구하고 자정까지 다녀와야 한다.
괜찮다!
내일도 모래도 다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하루 산 것이 20년을 채울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내일 일을 모르고 사는 것이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