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참 변하기 어렵다고 한다. 문제를 알면서도 같은 문제에 계속 걸려 넘어진다. "나는 이러 이러하다"라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각을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바닥에서도 자신을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이런 문제적 정체성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어난 조건이, 자라난 환경이, 지금 자신을 둘러싼 여건이 끊임없이 알려주어서일까? "너는 이러이러했으니 지금도 이러이러하다." 라고. 그러면 나를 바라보는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같은 문제에 걸려 넘어져서 자책을 계속 해야 하는가? "나는 이러이러했으니 지금도 이러이러하고 앞으로도 이러이러할 것이다."라고?
10년 전에 신고 있던 오천 원짜리 구두를 여전히 신고 있는 나에게 10년 후에도 그 구두를 계속 신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럼 여기에서 구두 신은 나를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구두 신은 나인가? 그걸 바라보는 나인가?
네빌 고다드라는 분이 있다. 1905년에 태어나 1972년에 돌아가셨고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해 1930년대부터 얘기해온 분이다. 형이상학자이자 강연자라고 하는데 요즘 같으면 자기계발 전문 강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끌어당김에 대해 얘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론해서 익숙한 이름이다. 아래는 네빌 고다드가 쓴 "전제의 법칙"에서 자아관념에 대해 말한 부분들을 발췌해 엮은 내용들이다.
"당신이 더 높은 수준의 존재로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더 높은 자아 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자신에 대해 지니고 있는 관념은 오직 다른 자아 관념을 가질 때에만 제거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자신에 대한 관념을 달리한다면, 모든 것은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규정한 존재이며, 모든 것 또한 그렇게 당신 스스로 규정한 것에서 생겨납니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당신 자신의 자아관념이라는 그 근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당신이 소망하는 것의 존재를 불신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것의 원인들을 이해해서, 좋던 나쁘던 당신 삶의 내용물들을 창조한 사람이 오직 당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모든 현상들을 더 깊이 통찰하게 되고, 의식이 가진 힘을 인식함으로써 풍요롭고 고귀한 삶을 더욱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동안 글을 써오며 나는 나를 줄곧 '오천 원짜리 구두 신은 나,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부족한 나, 결핍감과 불만족으로 스스로에 만족하지 않는 나'로 보고 있었다. 네빌 고다드의 말처럼 내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아 관념을 바꾸지 않아서 나는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처럼 줄곧 한 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나 자신으로.
네빌 고다드는 '구두 신은 나'가 내가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나'가 진정한 나 자신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구두를 벗고 날개를 달 수 있다. '바라보는 나'만이 10년 전에도, 지금에도, 10년 후에도 변함없을 뿐 명품 구두를 신든, 날개들 달든, 피겨 스케이트를 신든 나는 자유롭게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자아관념을 바꾸고 상상력을 통해 자신이 처한 물리적 조건과 환경과 여건을 변화시키는 것은 집중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한 훈련과 비슷할 것이다. 물을 수증기로 바꾸고 얼음을 물로 바꾸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생각해보라. 나에게는 지금 나 자신을 바라보는 틀을 벗고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틀이 우선이다.
10년 후의 내가 바라보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자유롭고, 풍요롭고, 스스로에 만족하는 나. 더 이상 자신을 결핍으로 바라보지 않는 나. 나로부터 자유로운 나. 종이의 은반 위를 흘러 춤추는 나. 파닥파닥 날개 달린 금빛 낙타 같은 신발을 신은 나. 그래서 은빛실로 연결된 우리의 가슴과 가슴 속에 사랑을 전달하는 존재이다.
종이의 은반
내 손가락에 착 달라붙는
은색 티파니 펜으로
종이의 은반 위를 흐르고 싶다.
은색 날렵한 금속 질감으로 단단하게
허리 두른 하늘색 띠처럼 세련되게
내 마음이 은색 펜이라면 좋겠다.
고정된 것을 흘러내리게
거미줄 뽑듯 섬세하게
종이와 만나는 접점에 집중하며
내 마음 펜이 되어 종이의 은반 위를 흐른다.
피겨처럼 우아하게
빙판처럼 단단한 백지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