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by 선향

윤동주 시인의 시 '쉽게 쓰여진 시'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나는 어쩐 일인지 이 시를 '나는 나에게 내미는 최후의 악수'라고 외우고 있었다. 나는 왜 내가 나에게 악수를 건네는 최후의 사람이라고 기억했을까? 나와 내가 내 안에서 화해하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나는 나에게 내미는 최초의 악수'라고 기억했다면 나는 나와 좀 더 일찍 화해했을까?


내가 내 손을 좀 더 일찍 잡고 눈물과 위안을 스스로에게 건넸다면 나는 좀 더 일찍 스스로에게 놓여놔 자유롭게 살았을 것 같다. 그만큼 스스로를 탓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자신을 믿지 못해 스스로에게 온 기회를 놓치거나 자신을 옭아매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


중년과 노년의 삶에 대해 많은 강의를 하는 상담전문가인 이호선 교수가 한 말이다.


"나이 들어 인기 있는 사람은 자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에요."


자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신에게 발목 잡히지 않는 사람, 자신이 가진 생각과 감정의 무게 때문에 삶이 무겁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과거에 대한 후회에 잠겨 있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의식이 지나치지도 않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워 에너지와 관심을 남에게 쓸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내 문제가 아닌 시대와 사회의 문제도 돌아볼 줄 알고 기여할 줄을 아는 사람이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항상 성장 환경에서 내가 관심을 덜 받고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자의식이 강하고 내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자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집안의 장남으로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라 평생 큰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온 우리 오빠는 어떠한가? 이제 예순에 이른 오빠 역시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크게 탓하고 있었다. 순조롭게 풀리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며 장남으로서, 오빠로서, 형으로써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가족에게 미안해했다. 오빠의 회한 어린 후회와 사과의 말들을 들으면서 우리 모두는 위로 했다.


"오빠 괜찮아. 오빠가 지난 20년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어. 우리는 지금 오빠에게 무척 고마워하고 있어. 이제는 오빠도 스스로를 용서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매단 커다란 돌덩이이다. 어디를 가든지 항상 자신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자책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만든다.


오빠가 오빠 자신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가 될 수 있길 바란다. 나 역시 나 자신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걸려 넘어진 모든 이들이 자신과 화해하여 악수하고 스스로에게서 놓여 놔 자유로워진 세상을 꿈꾼다.


미용실


저마다 일그러진 자기를 안아 들고

미용실 문을 열어요


뎅그렁, 여기 모서리가 부서져 내리는

네모가 땜질하러 왔어요


뎅그렁, 여기 찌그러져 납작한

타원이 바람 넣으러 왔어요


저마다 일그러진 자기를 거울 앞에 내려놓고

미용사 선생님 손에 맡겨요


저마다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자기를 내려놓고 잠시 휴식을 해요


임시방편 처치 받고 윤이 나는 자기를 다시 안아들고

저마다 미용실 문을 나서요

어떤 완벽한 자기를 꿈꾸셨나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