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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생긴 틈

사라진 특별함 대신, 남겨진 우리 방식

by 피터팬


두 달에 한 번꼴로

서울에 올라간다.


처음엔

그게 조금 설레는 일이었다.


며칠 전부터 옷을 챙기고,

서울에 가면 뭐 하고 싶은지

머릿속으로 그림도 그렸다.


전시회를 예매해두고,

맛집을 미리 찾아보고,

시간표를 짜듯 데이트 코스를 만들곤 했다.


하루는 청계천을 걷고,

하루는 동대문에서 카페 세 군데를 돌았다.

버스 타고 낯선 동네를 헤매는 것도

그땐 재미였다.


아내도 그랬다.

회사 끝나고 오는 길에

나 볼 생각에 신나 있다고,

퇴근하면서 메시지를 자주 보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조금씩 변했다.


지금은,

짐은 전날 밤에야 백팩에 넣는다.

입던 반팔, 반바지, 양말, 충전기.

가볍게 챙기고, 가볍게 나온다.


서울에 도착하면

아내는 늘 퇴근 중이고,

나는 역 근처 카페에서 기다린다.


더 이상

어디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나도, 아내도.


“뭐 먹을래?” 하고 물어보지만

사실상 아내가 정한 데로 간다.


족발, 떡볶이, 삼겹살, 뷔페...

고민은 몇 초 만에 끝난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간다.


밥을 먹고 나면

멀리 가지 않는다.


“좀 피곤하지 않아?”

그 말 한마디에

계획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근처 쇼핑몰이나 걷고,

책방에 들렀다가,

카페에 앉아 서로 핸드폰만 본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시간 보내는 게 아까웠을 텐데,

지금은 그냥, 이게 편하다.


편한 만큼,

익숙하기도 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나는 다시 제주로 돌아간다.


아내는

공항까지 데려다준다.


가는 길에도,

도착해서 인사를 나눌 때도

우리는 말을 아낀다.


“조심히 가.”

“응.”


그게 전부다.


이번에도

크게 특별한 건 없었다.

근데 마음 어딘가엔

뭔가 스쳐 지나간다.


전에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일정을 꾸미고, 장소를 찾고,

서툴게 노력했다.


지금은

서로가 익숙해진 만큼

조금 덜 움직이고,

조금 덜 감탄하고,

조금 덜 기대하게 됐다.


그게 서운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하면서

아직도 서로를 보고 있다는 게

가끔은 고맙다.


사랑이란 게

매번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만

유지되는 건 아니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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