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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Sep 15. 2019

한국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세가지

'한국, 이래서 좋더라' 5 - 아이 도시락 싸기, 셀프 미용실, 베이킹

해외살이를 통해 본 '한국, 이래서 좋더라' 1

학교 무료 급식,
저렴한 미용비, 베이커리 천국



1) 아침에 아이들 도시락 걱정이 없다는 것


이 이야기를 자니 친구 생각이 난다. 그녀는 올해 7월 스리랑카로 이주했다.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2여 년 정도를 나가 살기로 한 것.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는데 친구가 그런다.


"나, 새벽 5시에 일어나."


"응? 왜 5시에 일어나?"
(그새 그 생활을 잊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어, 애들이랑 남편 점심 도시락을 싸느라고..."



... 맞다, 외국 학교는 우리나라처럼 점심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침부터 정말 바쁘다. (물론 유럽 일부 나라 제외다.) 


우리 집 아침 풍경은 이랬다.


아이들은 대충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이고 점심을 싸느라 분주했다. 남편은 아이들을 먹이고 세수와 양치질을 담당하고 옷을 입히는 것을 맡았다. 나는 그 시간에 스파게티, 퀘사딜라, 불고기주먹밥, 소시지 볶음밥, 맥엔치즈, 샌드위치 등을 바꾸어가며 도시락을 쌌다.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에 몸을 데우며 도시락을 준비했고 간식으로 과일, 스낵, 주스도 하나씩 넣어 보냈더랬다. 한국은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점심과 간식을 제공해주니 정말 이것만으로도 천국이다!


아이는 급식때문에 김치를 비롯한 채소 반찬들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야호!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그렇다고요?"
(It's amazing!)



2) 더 이상 미용실 운영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는 남편을 비롯해 두 아이들의 미용사였다. 가위와 미용기구들을 상비해두고 아이들의 머리가 길어지면 그 더위에도 불구하고 욕실 bath 안에 앉혀서는 머리를 손질했다. 한 번은 이웃집 한국인 아저씨가 미용실을 다녀왔는데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결국 그의 아내는 나에게 뒷 머리를 조금 다듬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한 번은 나의 친구 알리시아 이야기인데, 그녀도 우리와 같은 직모를 가진 친구다. 한화 약 3만 원의 돈을 지불하고 다듬은 머리는 언발란스의 새로운 버전, 긴 머리 중간중간 끊어 먹은 듯한 싹둑 싹둑 잘라낸 흔적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친구는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의 미용기구 세트를 빌려갔다. 


친구야, 다시는 가지 말자. 우리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거야.


나는 한국에만 오면 출국하기 전 미용실에 가서 관리하기  머리를 하고는 했다. 머리를 어깨 길이보다 조금 더 긴 길이로 다듬은 다음,  파마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1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는 머리가 된다. 나야 그랬지만, 미국을 자주 다녀오는 사업을 하시는 교민분들은 LA, 마이애미 등지로 자주 출장을 가기에, 출장을 간 김에 미용실을 들러 꼭 세련되고 예쁜 머리들을 해서는 나타나셨다. 미용비용은 꽤 비쌌다. 컷만 70불, 팁까지 100불은 보통이다. 염색에다 펌이라도 할라치면 꽤 많은 비용이 든다고 했다. 모두 한국의 미용실을 그리워했다.


흑인의 모발과 우리의 것은 천지 차. 직모인 우리의 머리를 다듬는 데 영 병인 미용사에게 우리 집 식구들의 머리를 맡기느니 차라리 서툰 내가 만지는 게 낫겠다 싶어 첫째 아이가 기어 다닐 때부터 그리했던 것이 올해까지 이르렀다. 길어 나면 삐죽삐죽 못난이 머리 모양이 되는 내 솜씨는 더 이상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  


얘들아, 이제는 안녕!


가까운 곳에 있는 미용실을 세어보았더니 20군데는 족히 되었다. 그중 하나 잘 골라 갔더니 아이의 머리와 남편의 머리 모양이 아주 예뻐졌다. 이런 이유로 가내 미용실 운영을 8월부로 그만두었.



3) 더 이상 베이킹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더 이상 집에서 빵을 굽지 않는다. 떡도 만들지 않는다. 한 번은 아들이 G1(초등학교 1학년)에 다닐 때였나 보다.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가는 질문에 아들의 대답은 이랬다. "엄마의 직업은 베이커 baker예요."라고.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방긋 웃었다. "하하, 엄마 직업이 베이커라고? 하하하~" 얼마나 집에서 빵을 구워댔으면 아들이 엄마 직업을 빵 굽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정말 한 때는 빵을 미친 듯이 구웠다. 토요일엔 3~4가지 종류를 구워대느라 하루 종일 서 있었던 적도 있었고 밤늦게 일어나 다음날 아침 먹을 스콘을 굽기도 했다. 스콘은 가장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빵이었고 나의 페이보릿이었다. 가끔 잘 익은 아보카도를 먹기 위해 빵을 굽기도 했다. 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찹쌀오방떡을 구웠다. 태국에서 수입된 찹쌀가루와 팥 캔만 있으면 쉽게 구울 수 있는 찹쌀오방떡은 한국 떡을 먹기 힘든 곳에서 인기 만점이었다.


크랜베리와 호두를 넣은 스콘


한국을 가게 되어 잠시 남편만 남게 되는 때언제나 떠나기 전, 떡이나 빵을 구워 냉동실에 넣어두곤 했다. 친구 알리시아와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함께 빵을 구웠다. 그녀는 내가 구워댔던 당근 케이크, 아몬드 플로랑땡, 치즈케이크를 맛보고 난 뒤, 적극적으로 빵 굽는 것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치즈 케이크를 먹고서는 스페인 자기 동네 빵집의 그것과 맛이 같다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몬드 프로랑땡 made by me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전해 본 도너츠, 망했다



그게 그리도 즐거웠다. 할 것이 없고 밖에 나가는 일이 적은 날이나 친구가 떠나 마음이 울적할 때면 늘 빵을 구웠다. 그리고 이웃과 친구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구워서 나누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연신 빵을 구웠나 보다. 재료비는 엄청 들었다.


호밀빵 baked by me


한국에 오니, 맛있는 식재료와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 하다못해 밖에만 나가면 먹을 수 있는 길거리 분식 음식들, 그리고 집에 있는 수많은 배달 음식 메뉴들. 먹을 걱정이 없는 곳에 오니 나의 베이킹 실력은 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빵은 생지를 주문해 구워내면 막 반죽해 구워낸 빵이 된다. 맛도 마나 좋은지. 이제 더 이상 빵이나 떡을 굽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한국에 와서 좋은 이유 다섯 번 째는 바로 이런 가내 수공업 일들을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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