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수채화들을 감상하다 보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그릴 수 있는 거지?' 하고 참 궁금할 때가 많은데요. 수채화를 그려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기법들보다 그림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접근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원본을 그림 감독의 눈과 연출로서 이해하고 재디자인하는 모든 과정을 거쳐 실제로 표현하는 것에 기법이 사용되는 것이죠. 무작정 찍는 영상이 결코 좋은 영상이 될 수 없듯이 그냥 기법만 이해하고 그린 그림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보는 법, 생각하는 법, 의도에 맞게 재디자인하는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보고 있는 것입니다. 충분히 계획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이제는 적절히 표현하는 과정으로 들어갑니다. 수채화를 계속 그리면서 수채화의 다양한 표현은 다음과 같은 기법들과 물과 재료들이 서로 협력하여 표현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1. 웻 온 웻 기법(Wet on Wet/ Wet into Wet)
2. 웻 온 드라이 기법(Wet on Dry)
3. 종이의 타이밍(Timing of the paper)
4. 기타 효과 기법들(Effects)
이 중 수채화의 메인이 되는 기법은 1. 웻 온 웻 기법과 2. 웻 온 드라이 기법입니다. 이를 습식 기법과 건식 기법으로도 이야기하는데요. 쉽게 웻 온 웻 기법은 종이가 젖어 있는 상태, 웻 온 드라이는 종이가 마른 상태에서 채색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사실 기법이라고 볼 수 없는 3. 종이의 타이밍을 언급한 것이고요.(여기서의 타이밍은 종이가 마르는 타이밍을 의미합니다.) 그 외에는 물의 성격을 활용한 여러 효과들을 표현하는 기법들입니다. 웻 온 웻 기법과 웻 온 드라이 기법의 차이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좌측은 옐로우 컬러가 마르기 전에 블루 컬러를 위에 채색함으로 젖은 상태에서 블루 컬러와의 혼색이 이루어지게 했습니다. 웻 온 웻 기법이 되는 것이고요. 오른쪽은 옐로우 밑 색을 완전히 말린 후에 블루 컬러를 올려서 두 색이 겹쳐진 부분은 투명 셀로판지를 겹친 것처럼 혼색이 되신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웻 온 드라이 기법입니다. 두 기법이 상당히 차이가 나지만 수채화를 그릴 때 이 중 하나의 기법만을 사용하여 완성하지는 않습니다. 둘 중 한 기법을 더 많이 사용할 수는 있어도 이 둘을 혼합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또한 종이에 먼저 물을 충분히 공급하여 물이 충만한 상태에서 그리는 것과 아예 마른 상태에서 그리는 것에 따라서도 전체 분위기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채색 기법이 아니라 종이에 물을 먼저 충분히 공급한 후 그렸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에 따라 웻 온 웻, 웻 온 드라이 기법을 나누기도 합니다.
밑의 두 그림은 주로 웻 온 웻 기법을 사용하여 그렸지만 첫 번째 그림은 종이를 완전히 적셨다 싶을 정도로 종이 앞 뒤에 물을 충분히 바른 후 그린 그림이고, 두 번째 그림은 완전히 마른 종이 위에 붓에 충분한 물기를 머금고 채색하여 그 물기로 인해 종이가 젖은 상태에서 다른 색들을 더하여 부드럽게 블렌딩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안개속의 집 수채화 - 2020.03.03 - 종이를 완전히 젖게 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블렌딩이 이루어짐]
[트램이 있는 거리 수채화 - 2020.04.14 - 종이가 마른 상태에서 채색하여 명확한 경계들을 볼 수 있지만 붓의 물기를 활용하여 많은 면들을 웻 온 웻 기법으로 채색함]
밑의 예시를 보면 마른 종이 위에 오렌지 컬러로 채색했습니다. 마른 종이라는 것을 채색된 면의 경계가 부드럽지 않고 명확한 것을 보시면 아실 수 있죠? 채색이 마르기 전에 라인을 두 개 그어봤는데요. 둘 모두 같은 컬러이지만 물의 농도를 달리 하였습니다. 같은 컬러임에도 왼쪽은 희미하게 오른쪽은 명확하게 보이죠? 왼쪽은 물을 많이 오른쪽은 물을 거의 없이하고 물감 농도를 짙게 하여 칠한 것입니다. 이처럼 종이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도 농도를 조절하여 색을 올릴 수가 있는데요. 이는 마른 후에 레이어를 올리는 경우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입니다.
트램이 있는 거리 그림에서 성당과 트램의 어두운 면을 보시면 분명 밑 칠이 마르지 않은 젖은 상태에서 어두운 컬러를 농도를 짙게 더하여 부드러운 창문의 형태를 드러낸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 밑의 그림의 왼쪽 건물 하단은 밑 칠이 완전히 마른 다음에 어두운 컬러로 창문들을 채색했는데요. 경계가 명확하여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표현이 되었죠? 하지만 이 그림의 많은 부분에서 웻 온 웻 기법의 채색들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웻 온 웻, 웻 온 드라이 기법의 혼합 - 하늘과 땅까지의 초반 워시가 완전히 마른 후 건물 및 땅의 컬러를 채색. 건물의 창문들과 횡단보도에서 첫 워시를 커버하지 않고 남겨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음]
종이가 마르는 타이밍은 수채화에서 붓과 물감으로 채색하는 타이밍과 이로 인한 효과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밑의 예시는 채색된 면이 마르기 전에 물을 뿌려 효과를 나타낸 것인데요. 좌측의 부드러운 효과와 달리 우측의 효과들은 마치 폭죽이 터치는 것 같이 강렬하게 표현되었죠? 같은 양의 물을 뿌리더라도 종이가 마르는 타이밍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수채화를 그리는데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이상 종이를 건드리면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 종이에 채색을 하거나 물을 뿌리거나 하면 밑 예시의 오른쪽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이 때는 바로 '종이 앞면이 마르기 시작하는 순간'인데요. 이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물감의 피그먼트가 물과 함께 부드럽게 움직이며 서로 연합한다면, 종이 앞면이 마르기 시작하는 순간 붓을 대면 마치 막 잠들었는데 흔들어 깨워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가 생깁니다. 이제 종이는 지금까지 물과 물감이 만든 조화들을 부드럽게 기분도 좋게 종이 안으로 가져가려고 하는데 급격히 물세례를 퍼부어주는 느낌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이 시기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물로 사전에 종이를 젖게 하였을 경우이건, 마른 종이에 젖은 붓으로 물을 공급해 줬을 경우이건 종이가 아직 젖어있을 때에는 종이를 살짝 비스듬히 볼 경우 빛이 종이 표면의 물기에 반응하여 살짝 반짝이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반짝이는 느낌이 표면이 마름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사라져요. 이 순간부터는 종이가 마르도록 기다리거나 바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싶으실 경우 붓을 대지 마시고 헤어드라이어로 종이를 완전히 말리신 후 작업을 이어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표면이 마르기 바로 직전에 물과 물감, 종이가 보여주는 조화가 가장 황홀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매우 짧아 타이밍에 대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위의 메인 기법들 외에 물의 특성을 살린 효과들을 통해 다양한 표현들을 할 수 있는데요. 효과를 위한 주요 기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효과1. 뿌리기 (물감, 물)
뿌리기는 물감 뿌리기와 물 뿌리기 둘로 나눠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감 뿌리기는 붓으로 물감을 뿌려주는 것인데 붓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서 물감을 떨어 뜨리거나, 물감을 묻힌 붓 밑에 다른 붓을 탁탁 부딪쳐 그 충격으로 물감을 뿌리는 방법, 물감을 묻힌 붓을 손가락으로 퉁퉁 튕겨 물감을 뿌리는 방법 등이 있는데 본인에게 편하신 방법으로 사용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물을 뿌리는 경우는 농도차에 의해 무늬가 생기는데요. 물이 종이에 안착하고 있는 물감의 피그먼트들을 밀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생기는 무늬를 '백런(Back run)'이라고도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이가 너무 젖어 있을 경우는 무늬가 흡수되어 사라지고, 종이 앞면이 마르기 시작한 경우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무늬가 아니라 폭죽처럼 터진 형상의 무늬가 생깁니다. 하지만 의도에 따라 이러한 무늬들도 충분히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효과2. 소금 기법
좀 전에 이야기 한 폭죽처럼 터지는 듯한 형상의 무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굵은소금을 활용할 수 있는데요. 채색 후 칠이 마르기 전에 굵은소금을 뿌려 놓으면 삼투압 현상에 따라 독특한 무늬가 생깁니다. 하지만 무늬가 꽤 강렬하니 효과를 적용할 곳에 적절하겠는지를 고민한 후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종이가 완전히 마른 후 소금을 잘 털어내면 밑의 이미지와 같은 무늬들이 생깁니다.
효과3. 비닐 랩을 활용한 기법
비닐 랩을 활용해서도 재밌는 무늬들을 만들 수 있는데요. 채색을 한 후 마르기 전에 비닐 랩을 구겨서 무늬들을 잡아 줍니다. 소금 기법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종이가 마른 후에 랩을 제거하면 재밌는 무늬들이 생깁니다.
효과4. 칼로 긁어 하이라이트 만들기
투명 수채화에서 물감으로 채색하지 않은 종이의 하얀 면은 가장 밝은 빛을 표현합니다. 즉 손대지 않은 영역이 가장 밝은 것이죠. 물론 화이트 과슈나 커버력이 높은 불투명한 티타늄 화이트(Titanium White) 물감 등을 활용하여 이미 사라진 빛을 살릴 수는 있지만 종이 자체의 화이트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고 모든 하이라이트를 커버력이 있는 화이트로 칠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일부 종이의 화이트를 다시 드러내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커터 칼로 물감과 종이 일부를 살짝 긁어 내주는 것입니다. 밑의 그림에서 태양과 태양에 반사되는 물결의 하이라이트를 커터 칼로 긁어 표현해줬는데요. 과슈나 화이트 물감을 사용한 것보다 종이 자체의 화이트를 다시 드러내는 것이라서 더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다만 종이가 너무 상하지는 않도록 잘 조절을 해줘야 합니다.
웻 온 웻, 웻 온 드라이의 메인 기법들을 사용하실 때 주의하실 점은 그림의 단계들이 진행될수록 물감의 농도를 짙게, 물은 좀 더 적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채화 마스터 조셉 즈부크빅(Joseph Zbukvic)님은 차(Tea), 우유(Milk), 꿀(Honey)의 정도로 물감물의 농도를 구분하셨는데요. 스케치 후 초반 워시는 차의 농도, 초반 워시를 완전히 말린 후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들어가기 전 까지를 우유의 농도로, 가장 어두운 부분들은 마치 튜브 물감을 그대로 바로 찍어 쓰는 듯한 꿀과 같은 농도로 채색한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농도에 따른 물감물을 충분히 만드셔야 하는데 적당한 정도는 적어도 그 색의 물감물을 다시 만들지 않고 모두 채색할 정도로 충분히 만들어야 합니다. 종이가 마르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물감물을 충분히 만들지 않아 다시 만드는 동안 종이가 마르며 효과가 달라져 얼룩이 남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 됩니다.
[초반 워시 - 차 농도]
[초반 워시가 마른 후의 진행 - 우유 농도]
[어두움의 묘사 - 꿀 농도]
[언덕이 있는 거리 수채화 - 2020.09.22]
이러한 수채화 기법들의 특성들을 이해하고 적절한 농도와 타이밍을 찾는 연습을 하시되 기법들 자체를 단독으로 연습하시는 것보다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하면서 그 안에 기법들을 녹여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부분의 연습만으로는 그림을 완성할 수 없지만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면서 어느 타이밍에 어떤 기법들과 효과들을 쓰는 것이 나을지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물과 종이와 붓과 물감이 보여주는 수채화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