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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아 Dec 26. 2018

산책길 스케치 #4. 다시 서점

독립출판 서점 탐방기

박 선생님의 소개로 알게 된 , 독립출판서점  - 다시서점을 찾아갔다. 신방화와 한남동 두 군데 있는데, 오늘은 신방화로 갔다. 651번 버스 타고 항공비즈니스고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려서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카페202에서 꺾어지면 된다고 하셨는데... 카페 202에서 갈라지는 골목 구석구석을 다 다녀봐도 못찾았다. 내비가 다 왔다는데? 뱅뱅 돌아보니, 한쪽 구석에 보이는 작은 글씨 간판. 아무도 안 올 것 같은 허름한 문.

그냥 상가 지하 같은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반짝이는 글자들이 여기가 맞다는 듯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어어, 맞게 왔나 보다 하며, 현관문을 열자 은은한 조명의 서점이 나온다.

하지만 다른 서점에선 팔지 않는 책들을 파는 독립출판서점. (독립출판 책들을 파는 서점도 이제는 꽤 있다.)

책들을 비추는 조명이 마치 이 서점, 또는 서점 주인분의 마음 같았다.

사방을 둘러보자, 서점의 친구라 할 수 있는 문구들도 눈에 띈다.

문구들도 직접 만들어진 듯 했는데, 원고지 모양 메모지나 그림엽서들, 주먹만 한 일러스트북, 공책 들이 옹기종기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벽에 쓰인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 우리는 너무 생각이 많지. 느낌은 적고.

엽서의 이 그림을 보자, 회사의 한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월요일 아침이면, 출근하기도 전부터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귀요미 친구. 그 친구에게 이 그림을 보내주자, 자기 마음이 저렇게 또렷이 보이더냐며 깜짝 놀랐다.

책에서  책등의 역할은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책등에 쓰인 제목들을 하나씩 시처럼 음미하며 서성거렸다.

누가 가장 사랑받지 못했을까? 누가 가장 억울하게 죽었을까 ? 교토의 밤. 관객일기. ㅂㄴㅁㄹ. 안녕, 스페인. 감동벽 기록증. 낯선 위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숱한 사람들 속을 헤집고 나왔어도.

책 제목의 글귀가 랩 가사 같다. 버스킹하는 가수의 노래 같다.

고양이 중심 문예지도 있었고, 예쁜 핀도 있었고.

이 일러스트북은 넘기면 사람들 그림이 가득했다.

꽂히는 제목 - 바다로 퇴근하겠습니다!

무작정 떠난 초보 서퍼의 호주 서핑 홀리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드로잉도 느낌있고 표지를 들추면 호주 바다 풍경이 좋았다.

머리 모양을 빵처럼 표현한 붓 터치가 심플한 일러스트도 맘에 들었다.

벽에는  색연필 그림이 많아서 또 눈길을 사로잡았고, 나처럼 뒤늦게 그림에 재미를 붙인 독립출판 작가들도 눈에 띄었다.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독립출판 책들의 미덕 같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끄적끄적 뭔가를 쓰고 그리는 사람들이 많다. 왠지 이 책 작가들과는 만나서 차 한 잔을 나누면 화제가 끊기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책은 표지와는 달리, 풍부한 색과 선으로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책이다. 다시서점을 소개해 주신, 박 선생님의 선물이었다. 내가 그림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헤아린 박 선생님의 마음 때문에 깊이 고마웠다.

이 돈은 내가 이 서점을 간다 하니, 사고 싶은 책을 사라며  김 선생님이 주신 돈이다. 할머니처럼 왜 돈을 주냐며 펄쩍 뛰었지만, 중요한 일인 듯 일부러 복도로 불러내신 그분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손녀 느낌으로 돈을 받는데 눈물이 나왔다. 경험상  내 눈물은 사랑과 고마움에 가장 약하다.

다시서점에서 이 돈으로 뭘 살까 만지작거리며, 가게에서 사탕과 과자를 노려보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다시서점에 꽂힌 책들은, 돈을 벌 생각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서 만든 것 같았다.

나는  언니네 마당이라는 잡지와 공책 하나를 골랐다. 이미 읽은 기사도 있는 잡지였지만, 갖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서 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는 잡지였다.

돈과  일,  작가라는 직업과 책,  글과 삶에 대해서..

우리는 삶의 시간 동안에 일을 해서 돈을 벌며 살아간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서는 가끔씩 생각해 봐야 하는 것 같다. 돈을 버는 일이라고 무작정 해서는 안된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른으로서 하루종일 힘껏 하는 노력들이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을 하면서 살아가므로, 일에서 가끔은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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