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회고록 26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우리 부대는 5사단과 교대 후 화천 사방거리로 이동했다. 그곳은 전방과 후방으로 연결되어 있고 좌우로 교차된 곳이다. 좁은 곳에 개골창이 있다. 우리 대대는 천막을 치고 임시주둔지로 자리 잡았다. 나는 5사단과 교대직전 대대본부 통신대로 다시 복귀하고 무선반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나는 대대지휘소와 같이 행동을 했다. 무전병으로 대대장과 같이했다. 우리 부대는 그곳에서 며칠 있다가 연천으로 이동했다. 예비사단으로서 교육훈련에 임하게 됐다. 무전반은 판초우의를 연결하여 통신소 겸 잠자리를 만들었다. 다음날부터 교육훈련이 시작됐다. 1년 만에 다시 하는 교육이다. 그즈음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은 계속하면서도 여전히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 5월 들어 전 전선이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고 있었다. 연천에서 약 한 달 정도 주둔했을까 갑자기 이동명령이 내렸다. 우리는 목적지가 어데인지도 모른다. 통신장비와 개인장비를 철수, 미군차량으로 심야이동이다. 차량의 불빛이 통제되어 어두컴컴한 길을 달린다. 전지로 가는가 보다. 연천으로 이동할 때에는 차량의 불빛을 밝히고 왔었는데! 도착한 곳이 출발했던 사방거리에 또 왔다.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다. 그날밤을 그곳에서 CP천막을 쳐 밤을 새웠다. 개인천막은 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또 이동이다. 출동명령이다. 우리 부대는 전방으로 도보로 이동해가고 있었다. 한참 가니 사단비행장이 있다. 활주로에 집합했다. 대형 헬리콥터 Helicopter가 뜨고 내리고 하고 있다. 병력을 싣고 전방으로 급히 계속 수송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는 차량으로 그리고 또 일부는 도보로 투입되고 있다. 상황(전황)이 긴박한 모양인데 도대체가 우리 병사들에게는 알 수가 없다. 이미 먼저 도착한 부대는 거의가 투입되었다. 다음은 우리 부대가 투입될 차례다. Helicopter, 차량으로 닥치는 대로 실어 나르고 얼마나 급한지 우리는 미처 기다릴 여지도 없었던지 도보로 가란다. 우리 부대는 대오를 정리하고 행군해 들어갔다. 한참 가니 강이 있었다. 북한강의 상류다. 가교가 설치되어 있어 강을 건너갔다.
강 건너 언덕에 군악대가 우리를 환영하는 군악을 연주하고 있다. 사지로 들어가는 우리에게 마치 장송곡을 연주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리하고 돌아오라는 승전곡이기도 하다. 어두워져서 우리는 진지에 투입했다. 인계부대도 없다. 작전과에서는 지도를 보고 부대를 배치시키고 있다. 그때서야 전황을 알 수가 있었다. 위치적으로 봐서 우측에 5사단(우리 부대가 주둔해 있다가 인계된 진지)이 있고 8사단이 배치해 있다가 적군에 밀려 패전하여 병력이 후퇴 지리멸렬되어 버렸다. 그때전투에서 5사단도 적(중공군)의 공격으로 강을 건너 후퇴한 것 같다. 전엔 그 전방에 수도고지가 있었는데 그때는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간 연후다. 1대대가 전초독립된 고지에 배치되고 우리 3대대는 주 저항선에 배치됐다. 조용했지만 긴장됐다. 우리는 연대와 중대 간 무전기 시험통신을 마치고 대기상태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