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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 회고록 Feb 25. 2024

625 전쟁 ⑦

할아버지 회고록 28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625전쟁 ⑦



 우리는 중간쯤 능선 은폐된 곳을 찾았다. 숨어있다가 밤에 어둠 속에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낮 동안 지낼 은폐된 곳을 찾았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아군의 병사가 부상당해 신음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중상자인데 회생불가능한 상태였다. 몸부림을 치는데 최후적인 몸부림 같았다. 후송할 수도 없고 그들의 같은 부대원인 듯싶은 병사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 하나 입을여는 사람이 없다. 묵묵히 그의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잠시 후 몸부림도 멈추고 호흡도 멈추었다. 이것이 죽음인가. 누구 하나 슬퍼우는자도 없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누군가가 시신을 교통호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야전삽으로 흙을 덮어주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인생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데 그도 흙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보다. 마음이 착잡하다. 그 옆에 보니 죽은 시체가 흙에 덮여 일부가 노출되어 썩고 있다. 그 위에 구더기가 기어 나오고 있다. 그들의 부모형제들이 고향에서 무운장구 빌며 살아 돌아오기만을 신에게 빌며 학수고대하고 있을 텐데 비록 전방의 적은 중공군이지만 이것이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져서 본 대로 돌아왔다. 며칠 후에 우리 연대에 공격명령이 내렸다. 사단장(임선하 장군)의 명령이다. 빼앗긴 고지는 빼앗긴 부대에서 탈환하라는 것이다. 그 용맹스러운 18 연대(백골부대)를 예비부대로 후방(제2선)에 배치시켜 놓으면서 투입시키지 않고 우리 23 연대에 탈환명령을 한 것이다. 대대장은 우리 예하중대가 빼앗긴 고지의 탈환공격명령을 내렸다. 10,11 중대는 이미 공격지점인 능선 중간부에 배치되어 있었고 9중대는 예비대로 있다가 진격명령을 내렸다. 대대장은 9중대가 어느 지점까지 진격해 갔는가 무전으로 확인했다. 9 중대장 문 OO 대위는 계곡을 건너 적진 하단에 진출 중이라고 보고했다. 연대장의 명령으로 대대 OP를 전방으로 진출하기 위해 고지에서 골짝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면서 9중대의 진출지점을 확인했다. 중대장 문대위의 음성이 들렸다. 지금 중간능선까지 중대 OP가 진격 중이라는 보고가 무전기에 들려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문대위의 육성이 바로 옆에 있는 호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서 호 안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서 피신해 있으면서 허위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대장이 화가 났다. 정보과장에게 헌병대에 당장에 압송, 군법에 회부시키란다. 즉시 압송됐다. 전투 시에는 전지이탈자는 즉결처분(총살)권이 지휘관에게 부여되어 있다. 그러나 대대장은 권한은 행사하지 않고 압송시킨 것이다. 자기 부하지휘관이라서인지 인간적으로 대해준 것일까. 후문에 의하면 육군본부에 배경이 있어 면책되어 후방에 근무하고 있단다. 예나 지금이나 백이 있는 자에게는 중벌도 면할 수 있으니 한심하다 할까. 불쌍한 자는 빽 없는 자일 뿐이다. 


 결국 빼앗긴 고지는 탈환하지 못하고 대대 OP는 철수, 원위치로 후퇴했다. 다음날 재탈환하기 위해 지원포사격이 계속됐다. 맹렬한 포격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군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중공군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지원사격도 중지됐다. 피아가 엉켜 육박전이다. 그중에서도 적에게 잡혀서 끌려가는 병사도 있다. 참 안타깝다. 사정거리에 있으면서도 총을 쏠 수 없다. 나는 화가 났다. 무작정 공중을 향해 CAR총을 막 쏘아댔다. 부질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리고 우리가 탈환해야 할 고지는 중공군에게 완전히 빼앗긴 것이다. 이미 아군병사는 지쳐있었고 사기가 저하된 상태라 전의를 상실 역부족. 그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끌려가지만 누구 하나 도우려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것이겠지. 나 하나도 감당하지 못하니. 병사들의 무모한 희생은 지휘관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닐까. 포로 된 그 병사들 휴전되어 석방된 고향부모품으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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