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채집- 백지를 앞에 두고

새해의 감정

by 김온지



새해를 맞이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다이어리를 사는 일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꽤 성실하게 다이어리를 썼다. 뽀송하게 씻고 나와서 책상에 앉아 그날의 일과 기분을 정리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재작년쯤부터 기록하는 걸 온라인으로 옮기면서, 이상하게 다이어리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멀어졌고, 몸이 편해진 대신 알 수 없는 허전함은 늘 남아있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다시 내 손으로 종이에 쓰고 싶어졌다. 수기로 내 하루를 기록하고, 좋아하는 스티커로 예쁘게 꾸미는 일까지 하고 싶어졌다. 마침 새해라는 좋은 기회도 왔으니, 다이어리를 안 살 이유가 없었다.


일상을 기록할 다이어리 하나, 감사일기를 적기 위한 마음일기 하나. 함께 꾸밀 스티커까지 필요 이상으로 샀다는 걸 알면서도, 모아져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은 백지인 다이어리가 다가올 연말에는 꽉 채워져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 뿌듯하기도 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감사일기 전용 마음 일기장도 사봤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더라도 감사하는 마음 하나씩 안고 가면 하루가 조금은 더 보람찰 것 같았다. 찰나의 순간 속에서 작은 감사와 행복을 발견하는 소중한 일상으로 채워진 한 해를 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다이어리 첫 장에 검은 글씨가 내려앉으면 이상하게 부담감이 밀려왔다. 글씨를 예쁘게 써야지, 매일 써야지, 분량도 꽉꽉 채워야지 등등 일기 하나에 너무 많은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다이어리를 잘 쓰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놓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쓰지 않아도 괜찮고, 글씨가 삐뚤빼뚤 해도 괜찮다. 긴 내용이 아니더라도, 내 하루를 남기는 한 줄만 적을 수 있다면 충분하니까. 그렇게 하나씩 모아진 기록들이 연말의 나를 더 꽉 채워줬으면 좋겠다.



올해는 새해라는 핑계로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딱 내가 지킬 수 있는 소소한 다짐과 목표만 정했다. 다 이루고 해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키면 좋고 못 지킨다 하더라도 내가 또 다른 도전을 해냈을 거라 믿는다.


다이어리의 빈 페이지를 마주하는 일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기록은 나를 평가하기 위한 게 아니라 보듬기 위한 거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 2026년, 올해의 나는 그렇게 적당히 느슨한 마음으로 하루를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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