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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Mar 13. 2024

소개팅 안 할래?

화장실에서 울분을 삭이고 돌아온 오주임이 자리에 앉았다.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잖아.'


둘의 사이가 의심이 갔지만 이렇다 할 물증이 없었다.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어디 보자. 이 방법이 좋겠네.


- 공주임. 바빠?

- 응. 본부장님 말 못 들었어? 오전까지 자료 다시 보내줘.

- 그건 그렇고. 있잖아. 혹시 소개팅 안 할래?

- 소개팅?

- 응. 아는 오빠 후배인데, 옆 건물에 있는 K은행 알지? 거기서 일한데.

- 오주임. 소개팅 말고 데이터.


'안 넘어가네.'


- 준다 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오주임이 준 데이터를 받아 들고 통계를 다시 수정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값이 이상했을 텐데 알아채지 못한 실수도 있었다.


'암튼. 요새 정신 빠졌지. 공미소'


허리를 꼿꼿하게 편 미소가 모니터에 집중한 사이. 시계는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하나만 더하면.' 집중해서 입력 하려는데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공주임. 점심 같이 먹자."

"다이어트하는 거 아니었어?"


아까 너무 쌀쌀맞게 굴어 미안했던 미소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구내식당이 오늘따라 더 붐비는 것 같았다.


'평소 이렇게 많진 않았는데.'


알고 보니 본부장님 등장. 칙칙했던 구내식당이 훤히 밝아진 느낌이었다.


'언제 내려왔지?'


"공주임 여기야."


식판에 밥을 받고 수민이 손을 흔드는 자리에 앉았다.


"봤어?"

"뭘?"

"본부장님 말이야."

"응."

"너 알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내가 뭘."


일부러 같이 밥 먹자 내려오자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호락호락 대답해 줄 수민이 아니었다.


'밥이나 먹자'


미소가 식판에 코를 박고 한 입 뜨려는데 어디선가. 잘생긴 그 누군가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같이 먹죠."


'밥은 좀 편하게. 먹고 싶은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네. 본부장님."

"어머, 본부장님. 구내식당 오신 거 오랜만이네요."


오늘따라 수민의 하이톤이 거슬렸다.


"그러게요."

"앞으론 자주 오세요."

"가능하면."

"그나저나 공주임. 소개팅할 거야? 말 거야?"


'그 말이 왜 여기서 나와!'


"컥. 뭐?"


갑자기 국이 목에 걸린 미소가 한참 동안 기침을 해댔다.


"공주임. 괜찮습니까?"

"네."


준혁이 미소에게 물컵을 건넸다.


"그 후배 진짜 괜찮다니까. 얼굴 볼래?"


수민은 친절하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까지 보여주며 말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준혁의 헛기침은 수민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러게. 잘 생겼네."

"그? 잘 생겼는데 능력도 좋아. 한 번 해봐. 날짜 잡는다."

"아니 그런말이 아니잖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수민은 날짜까지 잡는다 호둘갑이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꺼내서. 식도 아래 밥이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공주임 소개팅합니까?"

"아니."

"네. 제가 시켜주기로 했어요. 진짜  어울릴 것 같은데. 그죠?"


수민은 본부장 얼굴에도 소개팅남의 사진을 들이댔다.


"전혀요."

"왜요. 이목구비 하며. 물론 본부장님이 훨씬 더 잘생겼지만."

 

미소는 작은 손으로 가슴을 연신 때렸다. 아무리 두드려 내려보내고 해도 내려가질 않았다. 렇게 불편한 식사는 처음이었다.


'직장인은 밥심인데. 내 점심밥.'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왜 일어납니까?"

"별로 생각이 없네요."


미소는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그런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건 준혁이었다.


"나도 생각이 없어서."


나란히 식판을 두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 뒤를 수민이 급하게 따라붙었다.


"의리 없이 먼저 가냐."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 오늘따라 침묵이 더 없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흔들리면서 툭 하고 정지해 버렸다. 중심을 잃은 수민이 준혁의 앞으로 쓰러졌다.


"괜찮습니까?"

"네. 본부장님."

"또 고장이군요."


준혁은 수민을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을 미소는 온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을 애써 감추려 애썼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제가 발목이 좀 약해서요. 아!"


수민은 발목을 가리키며 또 한 번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보자. 미소의 가슴에 울화가 치밀었다.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쓰러지려는 수민을 가까스로 잡았다.


"오주임 괜찮아? 조심해. 큰일 나겠다."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은 수민이 미소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흐흠"


그렇게 엘리베이터의 공기는 차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

수민이는 좀 나가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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