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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Mar 11. 2024

노란 장미

미소는 가까스로 준혁을 떼어냈다.


"이러다 출근 못 하겠어요."

"내가 본부장인데?"

"그러니까 더 안 되죠."


옥신각신 하던 차. 준혁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거실에 나가 통화를 옷방으로 들어온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그가 그녀의 이마에 머리를 툭 부딪히며 말했다.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공미소가 옆에 있는 게 가장 문제지."


또다시 다가오려는 준혁을 끌고 나왔다. 둘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회사 도착 500m 전. 남은 시간 20분. 걸어서 가면 충분히 도착할 곳에 차가 멈춰 섰다.


"그냥 가죠."

"안 돼요."

"공미소."

"왜요?"


과하게 조심해도 들키는 게 사내연애. 이제까지 봐온 사내커플이 그랬다.


'혹시 모르잖아. 오수민이 출근하다 볼지도. 아후 그 눈총을 어떻게 감당하라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왜 자꾸 위험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책임이라도 질 생각인가.'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 마음에 쿠션은 남겨두고 싶었다. 최대한 아무도 모르게. 그냥 잠깐 꿈을 꾼다고. 언제든 깰 수 있다고.


"여기서 내릴게요."

"누구 맘대로."


그는 기어코 회사 앞에서 미소를 내려주었다.


"올라가서 봅시다."


고급스러운 소리를 내는 한국에 딱 3대밖에 없는 세단은 미끄러지듯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혹여 누가 봤을까 무서워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초조하게 문이 열리기만을 바랐다. 그때 소름 끼치게 하이톤인 오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임. 지금 출근해?"

"오주임도 일찍 왔네."

"누구 때문에 한숨도 못 자서 얼굴이 푸석해졌잖아."

"그 누가 설마 나?"

"어머 자기야. 본부장님 말이야."


맞다. 잊었다. 너 극성팬이었지.


"그날 괜히 나 두둔하면 그럴까 봐. 일부러 그랬나 봐. 본부장님 생각도 깊지."

"그러게. 하하하하."


자고로 어른말씀은 틀린 게 하나 없다고. 똥은 피하고, 미친년과는 상대하지 말라고 했다. 본부장님과의 관계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오주임. 아니 오수민한테 만큼은 안 뺏기지. 여자의 적은 여자란다. 수민아.


"그런데 오주임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본부장님 발령받고 첫 출근이잖아. 기념할 겸 꽃 좀 꽃아 두려고."


윽. 이게 뭐야. 어쩐지.


"에취."

"왜 그래. 공주임. 내 꽃에 튀기라도 해봐."


미운 것 사람이 미운 짓만 골라서 한다더니. 하필 꽃을.


"내가. 에취. 꽃. 에취. 알레르기가 있어서."

"별게 다 있어. 공주임은."


'말을 말아야지.'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나무늘보 보다 느리다고 생각하며 사무실에 도착했다. 올라오자마자 사무실 안이 어수선했다. 본부장실에는 짐들이 속속들이 들어왔고 그걸 지켜보는 직원들은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기 바빴다. 그 속에 씨끄러운 오수민도 있었다.


"어머. 잠시만요. 제가 꽃을 좀 꽂아야 돼서요. 잠시만요. 죄송해요."


기어코 네가 꽃을 꽂는구나. 재채기가 나오려다 말았다. 그 꽃을 볼, 오늘 아침에도, 지금도 완벽한 준혁이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역시 잘 골랐어.'


자신이 골라준 넥타이가 정말 잘 어울렸다.


'누구 남자친구인지. 잘생겼네.'


미소는 준혁을 멀리서 바라보다 이내 자리에 앉았다. 그런 모습을 봤던 걸까? 준혁은 부러 미소의 자리를 지나쳐갔다. 엄마품 같은 향수 냄새가 미소의 코로 들어왔다.


"공주임. 좋은 아침입니다."


미소에게 인사를 건네고 본부장실로 들어간 준혁은 책상 위에 꽃을 발견했다. 정리를 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누가 가져다 둔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준혁은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을 떠난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던 꽃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그 꽃에 집착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누가 꽂아둔 건진 모르지만. 함부로 할 수는 없으니. 생각할 틈도 없이 업무가 밀려들었다. 오전 회의. 대표님 호출까지 끝내고 받아둔 기획안을 쌓아두고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거 월별 통계가 안 맞는데."


공주임이 만든 통계를 보고 있던 준혁은 미소와 수민을 호출했다.


"이 통계 누가 작성한 겁니까?"

"제가 오주임에게 받아서 작성한 겁니다."

"오주임은 월별 통계값 어떻게 산출한 겁니까?"

"그. 그게."

"오주임은 다시 확인해 주시고. 공주임. 오후에 보고 해야 하니 서둘러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 에취. 죄송합니다."


미소는 코가 간지러운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디 아픕니까? 공주임?"

"아닙니다. 제가 꽃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화병의 꽃을 바라보고 말했다.


"혹시 이거 누가 가져다 둔 겁니까?"

"제가요."


오주임이 아침과는 다른 가녀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치우시죠."

"네?"

"들었잖아요. 치우라고요."


수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본부장님 되신 거 축하드리려고 가져다 둔 건데요."

"축하는 받은 걸로 치겠습니다."


한준혁 특유의 냉소적인 말투. 속을 알 수 없는 저 표정. 수민은 어쩔 수 없이 꽃 병을 들었다. 그리고 본부장실을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왜 치우라는 거야! 내가 얼마나 고민해서 고른 건데."


속상한 수민이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한 번도 이런 모욕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설마 공미소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노란 장미꽃이 꽂혀 있는 화병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수민의 마음도 꽃병도 사정없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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