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토타의 보호 아래(3)

by 주이슬 Mar 18. 2025

“뭐가 그렇게 재밌어?”

벽 보수를 막 끝낸 로안이 집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로안, 어쩌지? 린델이 로마랑 니안 둘 다 별로라는데.”

“별로라고 안 했어요. 이상하다고 했죠.”

린델이 다급하게 정정하자 주방 개수대에서 손에 씻던 로안이 “그거 큰일이네. 우리가 야심차게 지은 이름이었는데”라고 말하며 씩 웃었다. 그리곤 물기 어린 손가락을 린델의 얼굴 앞에서 가볍게 튕겨냈다. 그늘나무 수액 향이 물방울에 은은하게 섞여 얼굴을 간지럽혔다. 린델은 잘 웃는 마니도, 장난기 많은 로안도 좋았다. 둘의 아이가 태어나면 자기의 친동생인 것처럼 잘 돌보리라 다짐했다. 아이가 조금 커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린델이 가장 아끼는 동물모양 나무 조각도 선물해 줄 생각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아이 맞이할 준비 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가린이 집으로 들어와 벽을 손끝으로 훑으며 말했다. 그리곤 린델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니랑 로안한테 줄 거 있다고 했잖아?”

린델은 작게 “아!” 소리를 내더니 방으로 뛰어 들어가 작은 목판을 들고나왔다. 그리곤 손가락을 꼼질대며 그것을 몇 초간 쳐다보다가, 이윽고 가까이 있는 로안을 향해 슬그머니 내밀었다. 목판 위에는 아주 작은 아기가 본인의 백 배는 훌쩍 넘을 정도로 거대한 토타에게 안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조악한 실력이라 어디가 팔이고 손인지 제대로 구분하긴 힘들었지만, 아기와 토타 둘 다 멋지게 뻗은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로안은 그림을 들여다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짓곤 곧장 마니에게 보여줬다. 마니는 그림을 보자마자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로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반짝였다. 린델이 빤히 쳐다보는 걸 눈치챈 그는 흠, 흠,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토타께서 우리 아이를 보살펴주시는구나.”

“네. 아기가 크면 꼬리가 엄청나게 단단해져서 힘도 셀 거예요. 근데 왜 울어요?”

“행복해서 그래. 네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 아름다워서.”

린델은 생각지 못한 칭찬을 받아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을 타고 크게 울리는 박동과 가빠지는 숨 때문에 되레 본인이 울고 싶어질 정도였다. 쌕쌕대는 린델을 마니와 로안이 꼭 감싸안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린델의 방에 가린이 들어왔다. 가린은 린델의 이불을 잘 여며준 다음,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린델은 눈동자를 천천히 굴리며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로안의 눈가에 글썽였던 눈물과 마니의 해맑은 미소. 본인이 그린 그림에 사람들이 감동하다니. 오늘은 그 좋은 감각을 최대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가린, 토타 이야기 들려주세요.”

가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곧이어 귓가로 흘러 들어왔다. 


옛날 옛적에…. 모운이라는 종족이 살고 있었어요. 모운족은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재물을 약탈하는 걸 즐기는 못된 괴물들이었답니다. 모운족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근처에 있는 마을 주민들을 못살게 굴었어요. 하루는, 작지만 평화로운 마을에 모운족이 들이닥쳤어요.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사람들의 집을 빼앗고, 음식을 요구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나중엔 고운 천으로 지은 옷과 보석까지 공물로 바치라고 요구했죠.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혼쭐내주겠다고 협박을 해댄 탓에 선량하고 연약한 마을 주민들은 매일 두려움에 떨어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부부가 모운족과 말다툼을 벌이다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했어요. 다행히 둘은 목숨을 잃진 않았지만 깊은 잠에 들어 깨어나질 못했죠. 그 부부에게는 어린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매일 부모님을 정성껏 돌보며 얼른 낫길 기도했답니다. 하루는 아이를 딱하게 여긴 마을의 촌장이 찾아왔어요. 촌장은 부모가 일어나기 위해선 숲에 정성을 올려야 한다고 귀띔해 줬죠.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하루 중 가장 순수한 물을 떠서 숲 구석구석에 뿌린 다음, 기도를 드리라고 하면서요.

아이는 곧장 다음 날부터 해가 채 뜨기도 전에 일어나 큰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낑낑거리며 숲으로 찾아갔어요. 그리곤 촌장님이 일러준 대로 나무와 풀에 물을 정성껏 뿌린 다음, 부모님이 얼른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보름이 훌쩍 지날 무렵이었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는 깨끗한 물을 준 뒤 기도하는 중이었답니다.

“부디 부모님이 얼른 낫게 해주세요.”

그때였어요.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숲이 눈을 뜨더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어찌나 크던지 아이가 고개를 힘껏 치켜올려도 얼굴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였죠. 숲은 무릎 한쪽을 꿇어앉더니 아이를 손 위에 부드럽게 올린 다음 눈을 마주쳤어요. 모든 생명의 지혜를 담고 있는 눈을 바라보며 아이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어요.

“다정한 아이야, 이름이 무어니?”

“저는……. 토타예요.”

아이가 겨우 입을 떼 이름을 알려주자, 숲이 빙긋 웃었어요.

“나는 네가 두 발로 겨우 걸을 때부터 지켜봐 왔지. 언젠간 네가 나를 깨워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단다. 덕분에 내 오랜 갈증이 해소되었으니, 소원을 들어주겠다.”

“정말인가요?”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어요.

“단, 조건이 있어.”

아이는 숲의 손가락을 꼭 부여잡고 침을 꿀꺽 삼켰어요.

“너도 알다시피 숲은 순수한 것들로 가득 차야 해. 네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선 필요한 게 몇 가지 있지. 새벽 4시 13분의 맑은 공기, 가장 먼저 퍼 올려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물,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아이의 이름이 필요하단다.”

숲은 아이의 머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어요.

“너의 영혼을 나에게 주겠니? 그럼 난 네 이름을 얻을 수 있어.”

아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곧 결심한 듯 강인한 눈으로 숲을 보며 말했어요.

“좋아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오늘 밤에 다시 찾아올게요. 약속해요.”

이전 02화 토타의 보호 아래(2)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