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 기관 실무자들과 회의하는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모였어요. 교육복지실에 들어가자마자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생들의 손글씨였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입니다.
사실 나태주의 [풀꽃] 시는 교육복지사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사 보수교육이나 교육복지사 연수 때 강사가 자주 인용하는 시거든요.
어쩌면 교육복지사는 학생들과 관계를 맺어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은 문장에 툭툭 가볍게 던진 짧은 문장 같지만 단어 하나하나 살펴보면 쉬운 내용은 아닙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자신과 관계 맺는 것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하는 시입니다.
그날 나태주 풀꽃 시가 시리즈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기했고 반가웠습니다. 오늘은 교육복지사의 자질을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로 풀어볼 생각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람을 사귀고 관계 맺는 것을 잘하고 싶어 합니다. 타인과의 관계 맺는 일은 인간의 기본 욕구입니다. 타인과 관계 맺고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욕구를 가지고 있죠. 누군가에게 사랑과 인정받기를 희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갈망이 아닐까요.
하지만 교육복지사가 만나는 학생들은 타인과 관계 맺는 것에 서툽니다. 자기주장보다 집착에 가깝고 고집이 쎄 타인과 타협할 줄 모릅니다. 상대의 의도를 왜곡하기도 합니다.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상대를 공격하거나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관계를 스스로 차단하기도 하죠. 공감 능력이 부족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타인과의 관계를 끊지만 결코 혼자 있을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강렬합니다. 하지만 상처 받기 싫어 되레 친구들에게 상처 주거나 관계 맺는 일을 회피하는 탓에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양가감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당연히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없어요. 어떠한 욕구가 미해결 된 채 남아있으면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새로운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교육복지사가 학교 생활이 힘든 아이들을 돕고 있는 이유입니다.
교육복지사는 학생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다른 말로 협력적인 관계라고 합니다. 학생의 주 호소하는 문제나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해결하기 위해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등교 거부하는 학생들을 점차 수업에 참여시키는 일처럼 학생의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해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기 위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어요. 교육복지사의 일방적인 관계는 결코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비자발적인 학생들과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변화와 성장의 성패가 좌우되니까요.
학생들이 처한 문제나 어려움은 다양합니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사고나 실직 등 가정이 위기 상황에 처해있거나, 이혼 등 가족 해체나 부부 관계 갈등, 폭력을 목격하고 무기력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요즘 학대나 방임되는 학생들도 늘고 있습니다. 친구 사이에서 소외되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 가해자나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어찌 아이들의 어려움을 문장 안에 담을 수 있을까요.
문제는 학생들의 위기 상황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문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보통 품행 장애나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 학생은 가정환경이 좋지 못합니다. 학생의 문제 행동을 다루기 위해서는 가정에 개입하는 이유입니다. 학생의 문제 행동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개입하는 과정이 어렵고 학생과 가정의 변화를 위해 긴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초기에 문제 행동이나 결핍된 니즈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문제는 만성화됩니다. 단순한 반항에서 타인을 공격하는 반사회적 행동이나 일탈하는 행동으로 커집니다. 경제적인 부담, 시간과 에너지가 몇 배 이상 들어가도 개입 시기를 놓치면 회복되기 힘듭니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나태주-
관심으로 관찰합니다.
중학교에 근무했을 때 교육복지 프로그램으로 매년 지리산 종주를 했습니다. 인솔하는 선생님 중에 과학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숲 해설에 관심이 있어 숲 해설사 공부를 계획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맨 앞에서 학생들을 이끌고 인솔했습니다. 산행 중에 야생화를 발견하면 걸음을 멈췄습니다. 산들바람을 맞으며 학생들에게 꽃 이름을 설명하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리산에 있는 꽃과 나무 이름은 생소합니다. 처음 보고 듣습니다. 학생들이 그냥 지나치는 이유일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꽃과 나무에 대해 알려주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관심이 생깁니다. 이름을 알고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꽃 이름 유래를 듣고 꽃과 나무마다 다른 모양과 색 특징을 알고 나면 친근해지는 것입니다.
학생들과의 관계는 관찰에서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이뤄집니다. 학생의 이름을 먼저 외우고 교육복지실에 찾아오는 학생들을 환대합니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제와 달라진 점은 있는지,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학생들이 보내는 눈빛과 표정, 행동을 자세히 봅니다.
장점을 보고 강점을 키웁니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풀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래 보아야 애정이 생기고 사랑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오래 보아야 타인의 장점이 보일 수 있습니다. 결국 결점마저도 끌어안게 되죠.
교육복지사가 만나는 학생들의 생각 패턴은 부정적입니다.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의미 부여하는데 익숙합니다. 타인의 약점, 부족한 점, 실수를 먼저 보죠. 관계가 삐뚤어지는 이유이지 않을까요. 물론 적당한 경계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적당한 경계가 상대방의 결점을 들추는 일은 아닙니다.
건강한 관계는 오랫동안 천천히 타인을 살피는 일입니다. 상대의 부족한 면을 캐고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찾는 일니다. 더 나아가 결점 또한 오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교육복지사는 학생들의 결점을 끌어안도록 돕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수용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도와요. 그러기 위해 학생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강점을 키우기 위해 학생들을 오래 보고 있습니다.
협조적인 관계는 과정을 쌓아야 합니다.
일에도 우선순위가 있듯 협조적인 관계도 순서와 과정이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하는 일부터 하지 않으면 순서가 뒤엉켜 엉망진창 어느 하나를 마칠 수 없습니다.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협조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의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학생의 성격과 특성을 알면 친구가 되고, 학생의 속마음과 니즈를 알게 되면 연인이 되는 것입니다. 학생과의 협조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순서와 과정을 쌓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육복지사의 욕심으로 학생들을 끌고 간다면 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놔야 합니다. 그래야 집착하지 않습니다. 집착한 관계는 더 이상 주고받는 균형 잡힌 관계가 아닙니다.
학생들과 함께 어떠한 목표를 정하고 이룰 때 서두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학생들이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변화가 없고 예전보다 심해져도 기다려야 합니다. 상대의 걸음걸이를 맞추고 관계를 쌓는다면 어느새 학생이 앞장설 겁니다. 사실 그런 믿음으로 교육복지사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나태주 시인의 [풀꽃 3.]로 교육복지사의 역할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교육복지사는 학생들이 저마다 다른 자기만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든든한 땅이 되어주는 일을 합니다. 자신이 꽃인 것조차 모르는 아이들에게 꽃 피워야 할 이유를 알려줍니다. 꽃이 피고 씨가 흩어지는 것처럼 자기 역량을 세상에 펼칠 수 있도록 아이와 동행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아이들이 꽃피울 수 있게 물과 햇빛이 되어주는 교육복지사의 언어에 대해 글을 써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