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자주 취했다. 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그는, 나에겐 걸어 다니는 담배 같았다. 담배냄새가 그의 체취였다. 술에 취한 그는 선물을 사 들고 오곤 했다. 한 번은 술에 잔뜩 취한 채 담배 냄새를 풍기며 내게 필름카메라를 선물했다. 찍는 법을 몰랐던 나는 그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곤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번 술에 취했을 때는 앨범이었다. 나는 잔뜩 쌓인 사진들을 내 위주, 동생 위주로 정리했다. 그 두 개의 앨범이 내 앨범, 동생 앨범이 됐다. 올케가 본가에 처음 왔을 때, 그 앨범을 봤다. 어쩐지 뿌듯했다.
아빠는 건설일을 했다. 도면을 자주 그려서인지 그는 그림을 꽤 잘 그렸다. 가끔 미술 숙제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건 혼자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림을 그려줬다. 그림엔 영 소질 없었던 나로서는 그의 그림이 신기했다. 특히 도형을 입체감 있게 잘 그렸다. 원래 꽤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아빠는 사업이 망한 후에도 세상 물정을 몰랐다. 좁은 주공아파트에 다섯 식구가 살 때도, LP판, 카세트테이프는 장롱 위와 책장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나와 동생의 문제집이 늘어나고 참고서가 쌓이자, 엄마는 아빠의 LP판과 카세트테이프부터 정리했다. 말이 정리지 그냥 버렸다.
평소처럼 술에 취한 어느 날, 아빠가 선물 대신 만화책을 빌려왔다. 이현세의 만화책이었다. 내게는 만화책 보지 말라고 그렇게 엄포를 놨으면서, 정작 아빠는 잔뜩 빌려왔다고 생각했다. 슬쩍 훑어봤다.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아빠 몰래 만화방 단골이 된 상태였고, <꽃보다 남자>, <오디션>, <나나>, <원피스> 같은 인기 만화에 심취해 있었다.
아빠는 옛날 작품들의 작품성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음악이든 만화든 문학이든, 옛날 것이 훨씬 철학이 담긴 좋은 것이라는 요지였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당시 나의 우상은 H.O.T. 였고 전후문학보단 팬픽이 좋았다. 아빠의 모든 취향은 그의 체취만큼이나 나를 질리게 했다.
술에 취한 그는 나약했다. 모든 것에 의존하고 싶어 했으나 정작 자기의 여린 부분을 술 없이는 드러낼 줄 몰랐다.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빠는 자기를 비정한 사회의 피해자라 여겼다.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편향되어 남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스스로 경상도에서 남다르게 깨어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딸인 내가 보기에 그저 질리도록 나약한 베이비붐 세대의 실패자였다.
독립한 이후, 나는 포항의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아빠에게서. 그 실패의 체취를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기질적으로 내가 그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즐겼다. 목표를 정해 달리는 것보다 사람들이 좋았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술을 마셨다. 아빠의 체취를 지우는 것은, 결국 나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에게서 멀어지는 만큼, 그는 작아지고 흐려졌다. 그리고 그건 결국 내가 나에게서 아주 많이 멀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요즘 내 취미는 요리다. 요리를 하는 동안은 머릿속의 생각이 잠잠해진다. 엄마와 통화를 하며 요리 이야기를 하던 중, 엄마가 말했다.
“그런 건 아빠 닮았네. 느이 아빠가 요리를 뚝딱뚝딱 잘하거든.”
닮았다는 걸 인정하기는 싫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아빠는 요리를 잘했다. 한 번은 술에 취한 그가 게를 잡아 온 적이 있었다. 공사 현장 근처 개울에서 잡았다고 했다. 그 게로 찌개를 끓였고, 꽤 맛있었다. 그 이후, 한동안 아빠는 계속해서 게를 잡아왔다. 그다음은 미꾸라지, 돼지껍질 등 꽂히는 식재료를 잔뜩 구해오곤 했다. 그게 그의 최선이었다.
밥을 먹다 말고 아빠를 떠올렸다. 그는 이제 의지할 곳을 찾았을까. 내가 가졌던 심장의 깊은 구멍만큼이나 그에게도 그만한 구멍이 있었다. 그의 구멍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순간, 술을 마시고 담배 피우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그가 더는 나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게 나름의 보호막이었다는 것을, 나와 닮은 그는 아마도 깊은 두려움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때로 외로움의 형태로, 겪어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올 터였다.
딸인 내가 항암치료 후 그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때, 아빠는 내게 밤하늘 사진을 보내주곤 했다. 개인적 감상을 덧붙인 채였다. 술에 취하지 않은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고, 나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번쯤 하늘 예쁘네. 정도의 답을 했다.
저렇게 여려서 무슨 사업을 하겠냐며 엄마는 혀를 찼고, 나는 마치 그 말이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 내가 붉은 육류를 먹지 않게 된 이후, 버섯을 넣어 끓여주곤 했다. 문득 그에게 된장찌개 레시피를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여서. 나와 닮은 그는 아마 짧은 답으로 긴 말을 대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