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통의 날.

진짜 보통의 날.

by 이븐도




눈을 감았다 떴더니 봄이, 어쩌면 계절이 그냥 제자리로 돌아와 있다. 잔뜩 초록색이다. 세상이 원래 이랬던 것처럼 한 바퀴를 돌았다.


딱 이럴 때 죽었던 애들이, 죽어 가서 그다음과 다다음 계절에 죽었던 애들이 생각났다. 단어를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런데 죽은 걸 죽었다고 하지 뭐라고 하겠는가.


자동반사처럼, 그렇다고 그들이 매주, 매달 그렇게 간 게 아닌데. 나는 퇴근해 아침 광휘가 가득한 아름다운 바깥을 보자 무서워졌다. 어떤 논리적인 이유도 없고, 마침 밤을 샜으니까, 당황스럽고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냥 나쁜 꿈 같은 거, 꿈도 아냐. 그냥. 피곤이 만들어 낸 불안이나 그 비슷한 무엇이다.





1인실에서, 긴 몸을 눕히고만 있던 소년과 검사를 보낼 때마다 고생을 했던 애가 생각났다. 2년 전 인어공주 실사 버전이 개봉했을 때 시들던 여자애가 생각났다. 봄이었다. 아니. 진짜 계절이었다. 살아난 때. 그들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냥 사실일 뿐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연상이 되는 걸까.

왜, 대체 왜?


1인실. 1인실. 아무리 해열제를 줘도 떨어지지 않는 열. 아프다고 하는 조용한 말들. 아파요, 아파요. 티를 내지 않는 청소년기 남자애. 예민해진 엄마. 우는 보호자들. 여전히 멀쩡히 돌아가는 병동.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은 그들. 질병은 재앙이었고 피할 수 없는 균열이었다.

나는 균열이 생기면 부쉈다. 글을 썼고 달리기를 했다. 부숴서 차라리 다 무너뜨렸다. 그들은 무엇을 부술 수 있나. 나는 이제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누워서, 검사를 기다리면서, 혹은 어떤 선고를 기다리면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런 순간들은 꿈 같다. 세상에는 불행이 너무 많다. 너무 예쁘게 생겼으나 평생 사지를 못 움직이고, 자기를 버린 부모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의식 상태로 숨만 쉬다 가는 애들이 있었다. 세상을 다 알고서도 망가져 가는 본인과 붙어 있어야 하는 애들이 있었다. 어느 것이 어떻게 더 불쌍하고 가여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가여움을 몰랐다. 그런데 알게 되었다. 진짜 가여운 거였다. 나는 균열이 생기는 게 무서웠다. 그들은 늘 부서지고 있었다. 죽어가는 애들이 진짜 죽어버린 걸 너무 많이 봤다. 나는 그가 죽어가는 게 아니기를 바란다. 이제는 그런 쓸데없는 예측을 하게 된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항생제 스텝 업이 마지막이길, 해열과 진통의 간격이 넓어지기를.




밖이 너무 밝았다. 방구석에서 이런 걸 긁어내고 있기에는 날이 너무 좋다. 나에게는 이럴 시간이 없었다. 몸이 멀쩡할 때 행복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장면들이 남았다. 나는 쓸데없이 알고 저장해 버렸다.


신은 없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죽는다. 이곳에는 신이 없다.

그들은 너무 아프고 가엾다. 본인이 부서지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다.




나는 왜 슬픈 걸까. 그냥 눈물이 좀 흘리고 싶었는데 건수를 잡은 걸까. 그래. 잠을 안 자서.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잖아. 그러니까 그렇다. 무시 못 해.


나는 쓸데없이 그들이 가여워 너무 안타깝다.

무용지물인 이 마음이 괴롭다.






괜찮을까?

맞아. 나는 괜찮다. 내가 괜찮으니까. 그들은 남이니까. 내가 대신해줄 것도 누워 있어 줄 것도 아니니까. 이런 동정이나 이입은 아무 쓸모가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감정인 것이다. 입력되었으니 유사한 것을 보고 출력해 버리고, 그걸 보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원래 항상 세상은 똑같았다. 오늘만 그랬던 것처럼 유난을 떨어서는 안 된다. 그냥 그럴 필요가 없다.


항상 이랬다. 늘. 내가 알던, 봤던 때에도, 그전에도, 앞으로도. 그러니까 상관없다. 괜찮은 거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잖아. 박제시키고 밟고 지나서 다시 걸으면 된다. 항상 그랬다. 이외의 방법은 없다. 그래서 어쨌든 괜찮다.


씻고, 자면 된다. 그냥.. 같은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맞아. 우선 잠을 안 잤잖아. 그래서 그래.

무용지물이다. 보고도 안 본 것이고 들어도 안 들은 것이다.

지나온 일? 잊기 위해 쓴 것이다. 잊은 것이다.

사라진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원래 아팠다. 내가 알 때도 모를 때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보통의 날이다. 오늘도. 그런 것이다. 정말 보통의 날이다. 평범한.

나는 즐거운 오프를 보낼 것이다. 이런 일들을 지난 것처럼 똑같이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리버틴즈 노래가 너무 좋다. 아마 이걸 너무 열심히 들어서 그렇다. 진짜 그런 것 같다. 과하게 감상한 것이다. 맞는 것 같아. 그렇다. 근데 정말 좋잖아? 그래서 그렇다.

별일 없고, 노래에 이입한 날인 것이다. 이게 사실이다.

날이 좋고 이런 다 부서진 것 같은 곡이 땡긴 날.

그래서 그렇다.


다만 기록이고 시간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면 되고 지나면 잊히게 놔두는 것. 오늘도, 이것도 그렇다. 평범한 것이다. 리버틴즈는 참 멋진 밴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