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아주 잠깐 스치는 계절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라는 책이 있다. 김경주 시인의 첫 시집이다.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이 말 뜻을 왠지 알 것 같았다.
내 몸이 계절 변화를 감지하는 단서는 추위다. 내 몸의 사계는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뉘는 게 아니라 춥냐 안 춥냐로 나뉜다. 추우면 계절을 불문하고 한파다.
지금처럼 일교차가 큰 날씨에는 낮과 밤의 체감온도가 확연히 달라서, 밤중에 편의점이라도 갈라치면 경량 패딩 정도는 걸쳐줘야 한다. 같은 밤 같은 시간, 반팔에 반바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도 이제 좀 시원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멀리 둘러볼 것도 없이 나는 남자 친구에게 안 춥냐고 계속 묻고, 남자 친구는 내게 안 덥냐고 계속 묻는다.
비정상적으로 냉기가 도는 몸인지 나는 일 년의 절반 이상을 히트텍과 함께한다. 히트텍의 계절은 9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날짜도 정확하다. 인스타그램 지난 피드를 보니 올해 4월 15일, 다 늘어난 히트텍과 작별한다고 신나 했는데 9월 28일부터 다시 입는다. 히트텍을 입는 날과 벗는 날, 나는 이 계절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라고 느낀다. 사람들의 옷차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욱 와 닿는다.
어제 나는 일부러 늘어난 히트텍을 입었다. 목 부분이 오프숄더 수준이고 소매가 손등을 덮어버려서 팔목까지 돌돌 말아 올려야 했다. 당장 버려도 아쉬울 게 없는 내복을 고집스럽게 서랍장에 넣어뒀다 꺼내 입는 이유는 단순하다. 늘어난 히트텍만큼 이 계절에 유용한 내복이 없어서다. 몸에 적당히 붙는 정상적인 것을 입으면 티셔츠의 목둘레 바깥으로 히트텍의 존재가 고스란히 노출되고 만다. 추워서 입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9월에 내복이라니 내가 봐도 유난이다. 뭐 미관상의 문제도 있고.
벌써 히트텍을 챙겨 입고 티셔츠에 카디건, 모직 재킷에 머플러까지 두른 내 모습은 아직 반팔 차림으로 부채질을 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사람마다 다른 체감온도 덕분에 각양각색 사계절 옷차림이 등장하는 계절. 사람에게서 계절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 소속감 없는 계절을 나는 계절의 틈새라고 부른다. 특히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틈새는 내가 가장 아끼는 계절이다.
내게 가을은 아주 잠깐 스치는 계절, 모든 계절의 틈새가 좋지만 이 좁고 짧은 틈새는 세상에 없는 계절일지 모른다.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