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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 Oct 02. 2024

나나의 위대한 서점

두든 두근 첫 출근

첫 출근하는 아침.

밤새 잠을 설친 나나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는다.


“아, 이 머리카락들을 어쩌면 좋지?”


나나는 구불거리면서 풍성하다 못해 우거진 덤불숲 같은 머리카락들을 연신 빗어 내리며 툴툴거린다.


“역시 양갈래로 땋는 게 최선이겠지?”


짧게 한숨을 쉬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머리를 땋아 내린 후 양쪽 귀 옆으로 보이는 잔머리카락들을 잡아 실핀으로 고정시킨 후 작은 거울로 요리조리 살피면서 삐져나온 머리카락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꼼꼼하게 살핀다.


“나도 찰랑거리는 머릿결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나는 머리숱 많고 구불거리는 자신의 머리카락들이 싫었다.


 이 머리 때문에 어릴 때부터 머리털 괴물, 덤불머리 같은 별명으로 불렸고, 한때 고향 마을에서 유행했던 단발 커트도 따라 할 수 없었다.


머리손질을 마치고 얼굴에 로션을 바른 후 분홍빛이 도는 립스틱을 살짝 발라본다.


이 립스틱은 같은 반 짝꿍이었던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인데, 생각보다 분홍색이 자신에게 어울렸고, 이것 때문에 왠지 얼굴이 예뻐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반듯하게 다린 하얀 셔츠를 입고 짙은 남색 리본을 묶은 후 같은 색의 긴 스커트로 깔끔하면서 단정한 멋을 낸다.


‘뭐든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오늘만큼은 어떤 실수도 하면 안 돼’


혼자 몇 번이고 다짐하며 작은 가방을 챙겨 들고 방을 나와 응접실을 지나쳐 현관으로 나갈 때 신문을 들고 모닝커피를 마시려는 오덕이를 만났다.


“나나야 지금 출근하기에는 좀 이르지 않아?”


“응, 그냥 잠도 일찍 깼고, 빨리 가서 주위도 구경하고 싶어서”


나나가 웃으며 말하자 오덕이는 고개를 저으며,


“어휴~ 그런 값싼 노동을 하러 가는 게 뭐 그리 좋다고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떠는지 알 수 없구나~”


비아냥 같은 오덕이의 말에 기분을 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나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값싼 노동을 하러 가는 노동자는 이만 나가볼 터이니 귀한 오덕이 님은 황금빛 찬란한 아침을 보내십시오~”


나나의 말이 끝나자 오덕이와 나나는 서로 큭큭 거리며 웃는다.


“기다려~ 차로 데려다줄게 길도 아직 모르잖아”


 오덕이가 신문을 가까이에 있는 탁자 위에 던지며 말하자 나나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혼자 갈 수 있어, 나가서 마을버스 한 번만 타고 내리면 바로 코앞인데 뭐”


나나는 오덕이가 따라올까 싶어 현관밖으로 달리듯 빠져나가며 외친다.


“걱정 마~ 오덕아 이따 집에서 봐~”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알았지?”


“응~ 고마워~~”


오덕이는 손을 흔들며 뛰어가는 나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슬쩍 미소를 짓는 듯하더니 금방 평소의 심드렁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던져둔 신문을 집어 들고 소파에 앉자마자 집사가 내어온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며 기사를 읽기 시작한다.


나나는 오덕이의 저택을 나와 십 분 정도 걷자 들꽃 나무다리역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벽에 붙어있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지금이 7시 48분이니까, 어 7시 55분에 버스가 있네~ 역시 요즘 운빨이 굉장하구나 송나나’


혼자 실실 웃으며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이른 아침의 공기를 깊이 들여 마신다.


“호읍~~ 푸아~ 이 대도시의 공기”


나나는 어젯밤 잠들기 전 몇 번이나 봐두었던 여기서 위대한 서점까지 가는 순서가 적힌 메모를 다시 펼쳐본다.


A21번 하늘색 마을버스/ 들꽃 나무다리역 ㅡ> 6 정거장ㅡ> 위대한 서점 사거리역하차 ㅡ> 왼쪽으로 직진 300M ㅡ> 코코링 카페 ㅡ> 위대한 서점 후문 ㅡ> 지하 1층으로 9시까지.


 눈으로 천천히 내려 읽은 후 다시 곱게 접어 가방에 넣자마자 나나가 기다리던 하늘색 마을버스가 다가왔고, 점점 빨라지기 시작하는 심장을 애써 다독이며 버스에 올라탄다.


두세 명 정도뿐이었던 버스 안이 승객들로 꽉 찰 때쯤 나나가 내려야 하는 위대한 서점 사거리역에 도착해 다른 사람들 어깨에 밀려 겨우 내린 나나는, 눈앞에 펼쳐진 대 도시의 아침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만다.


수많은 인파와 차선 가득한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전차들.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고 커피와 도넛, 토스트와 샐러드를 팔고 있는 가게주인들의 호객소리와 무표정한 얼굴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얼굴뒤로 보이는 대형 전광판에는 어제 하루동안 있었던 레인보우 시티의 사건사고들이 계속해서 보도되었고, 그 화면을 가로질러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마녀와 까마귀들의 모습까지.


 언제나 TV에서나 보던 레인보우 시티의 모습이 나나의 두 눈앞에 펼쳐지자,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 그대로 멈춰 서서 멍하니 서있었다.


하지만 곧 여기저기 어깨를 밀쳐대고 지나치는 사람들 때문에 나나는 넘어질 뻔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위대한 서점의 후문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단순한 길이었지만, 나나는 집중해서 주위를 살피며 코코링 카페를 지나 무사히 위대한 서점 후문에 도착했다 서점 오픈시간은 9시.


지금은 아직 오픈까지 30분이 조금 더 남아 있었기에 근처에 보이는 ‘아침식사 가능’이라고 쓰여있는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테이블 세 개가 전부인 이 가게는 할머니 한분이 하고 계셨는데, 아침 메뉴로는 호두쿠키, 말린 정어리와 당근 샌드위치, 그리고 호박수프와 음료로는 뜨거운 커피, 홍차, 우유, 초코가 있었다.


나나는 메뉴판을 천천히 살펴보며 “할머니, 저 호박수프 하나만 주세요” 하고 의자에 앉자, 바쁘게 일하던 할머니가 동작을 멈추고 뒤돌아 나나를 쳐다본 후 대뜸,



“아가씨는 여기 사람이 아니네?” 하고 묻는다.


 나나는 조금 놀란 목소리로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하고 웃으며 되묻자,


“그냥 바로 느낌이 왔어~” 하며 뜨거운 호박수프를 한 접시 가득 담아 작은 스푼과 함께 테이블에 올려준다.


나나는 뭔가 더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다시 일에 열중하는 할머니 모습에 나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뜨거운 호박수프를 후후 불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호박수프가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첫 출근의 긴장감에 입맛은 없었지만, 허기가 지면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할까 걱정되어 조금이라도 배를 채울 생각으로 들어왔던 처음과는 다르게 나나는 금방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다.


“와~ 잘 먹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시계를 보자 어느덧 8시 48분이었다.


 나나는 얼른 입을 닦고 일어서며 호박수프값을 계산하려 할머니에게 다가가자,


“위대한 서점 직원인가?”


또다시 할머니가 물었고, 나나는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네, 할머니 오늘이 첫 출근이에요”


“흐음~ 그렇군, 그럼 자주 보겠네 아가씨”


“네~ 맛있는 호박수프 다시 먹으러 올게요”


꾸벅 인사하고는 서둘러 후문 앞으로 달려가는 나나를 할머니가 유심히 쳐다본다.


두근두근 또다시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서점 안으로 들어가기 전 한쪽 벽에 서서 손거울로 얼굴을 확인한다.

삐져나온 머리카락 없고, 치아 사이에 호박수프 없고! 지워진 분홍 립스틱을 다시 살짝 바르고 크게 한번 숨을 내쉬며 열려있는 후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온 후문 안에는 2층 복층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홀이었고 벌써 많은 직원들로 붐볐다.

나나는 두리번거리다 안내라고 쓰여있는 곳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통화를 끝낸 직원이 나나를 바라보자,


“안녕하세요~ 신입사원인데요, 후문으로 9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자 안내 창구에 있던 직원이 미소 띤 얼굴로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신입 사원분들은 뒤에 있는 계단을 올라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회의실 A라고 쓰여있는 곳이 보이실 거예요 그곳에 들어가 기다리시면 됩니다”


다정한 설명에 나나는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하며 알려준 대로 회의실 A라고 쓰여있는 문을 찾아 열고 들어갔다.


방 안에는 이미 벌써 와있는 3명이 각자 조금씩 떨어져 앉아 있었고, 침묵의 어색함이 돌고 있었다.

나나가 쭈뼛거리며 창가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곁눈질로 사람들을 살펴보는데, 모두 자기와 비슷한 나이대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 2명과 검은 후드를 뒤집에 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성별이나 나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시간으로 미루어 보아 더 이상의 다른 신입사원이 올 것 같지 않자, 나나는 자기를 포함해 신입사원이 4명뿐이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9시 정각, 사무실의 문을 열고 키가 작고 통통한 한 여자가 들어와 작은 파일을 열어 보며 자기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인사담당을 맡고 있는 추추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은 3개월간 수습사원으로 일하게 되고, 이후 상담을 거쳐 정식 사원이 됩니다”

“자 이제부터 각자 3개월 동안 일을 배우고 익히실 층과 코너를 알려드릴 테니 잘 듣고 기억하셔야 합니다”


나나는 추추의 말에 귀가 번쩍한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마음속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3층 문학 코너로 가게 해 주세요~! 제발~’


나나는 두 눈을 질끈 감은채 머릿속으로 계속 3층 문학코너를 되뇌며 기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추추가 나나의 이름을 부른다.


“송나나 씨~”


“네~! 송나나~! 제가 송나나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홍당무가 된 나나를 보며 추추 역시 미소 띤 얼굴로


 "아주 활기찬 분이 들어오셨군요~, 송나나 씨는 2층 취미, 실용 코너로 가셔서 일하시면 됩니다, 자 그리고 다음은...”


추추의 설명에 나나는 애써 실망한 표정을 감추며 네 하고 대답했지만 3층 문학 코나가 아니더라도 같은 층이거나 4층 전문서적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하필 취미와 실용코너라니...


나나는 실망과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매장 배정을 모두 알린 후 추추는 신인사원들에게 유니폼과 이름이 새겨진 명찰, 그리고 동그랗고 초록색으로 만들어진 수습 사원 배지와 사물함 번호가 적힌 열쇠를 나눠주며 말했다.


“계단을 내려가 바로 보이는 양갈래 복도에서 남자분들은 왼쪽 여자분들은 오른쪽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가시면 자신의 이름이 붙어있는 사물함이 있을 겁니다. 그곳에서 유니폼을 환복 후 이곳으로 아래에 있는 안내 창구 앞으로 모여주세요, 시간은 30분 정도 드릴 테니 천천히 갈아입으시고 명찰과 수습배지 모두 올바르게 착용하고 와주시길 바랍니다”


추추의 설명에 4명의 신입 사원들은 둘씩 나눠져 남녀의 휴게실로 들어갔는데, 검은 후드를 쓰고 있던 사람도 나나 뒤로 여성 휴게실로 들어왔다.


 휴게실안은 상당히 넓었고 줄지어 들어차 있는 사물함 사이사이 커다란 거울들과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의자와 협탁들이 있어 옷을 갈아입고 용모를 살피고 꾸미기에 좋았다.


같이 휴게실로 들어온 여자에게 조금 전 나나는 용기 내어 먼저 인사를 했지만,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한 건지 여자가 대꾸조차 없이 자기 할 일을 하자, 나나도 더 이상 어떤 말도 없이 입을 꾹 다문채 자신의 사물함을 찾아 옷을 갈아입고 명찰과 배지를 달고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와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여자가 말없이 휴게실을 먼저 빠져나가는 게 거울로 보였다.


 ‘왜 저런데? 가까이서 보니,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던데, 내가 싫어서 그런가?

아니면 도시 사람들은 원래 다 저런가?’


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삐쭉거리며 사물함 문을 닫고 다시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갔다.


나나는 사람들과 멀찍이 덜어져 있는 그 여자애를 곁눈질로 살펴보다 자기와 다른 사원들이 입은 유니폼과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위대한 서점의 유니폼은 올리브색의 멜빵바지와 흰색 셔츠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 여자애는 흰색 셔츠에 검은 멜빵바지 차림이었고 수습사원을 알리는 배지도 초록이 아닌 빨간색이었다.


‘뭐지? 왜 저 사람만 유니폼도, 수습배지도 다른 거지?’


나나가 이상한 듯 계속 생각했지만 알 수는 없었고, 순간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추추가 신입사원들에게 직원용 엘리베이터로 이끌며 각자 일하게 될 매장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나는 2층, 저 안경 쓴 남자분은 4층이었고, 옆에 계신 분은 1층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저 여자애는 어디였더라?’


또다시 생각에 빠진 나나 그리고 ‘아~! 맞아 지하 3층, 3층이었어, 그런데 지하 3층에도 매장이 있었나?’


자신이 앞으로 3개월 동안 수습사원으로 지낼 매장 2층의 모습이 열린 엘리베이터 문 앞으로 펼쳐져 있는 것도 모른 채 나나는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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