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휸 Aug 17. 2023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들어진 모든 것

입추를 지나고


가을로 접어든다.

만물은 겸허히 때마다의 절기를 살아내는 가운데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오묘한 경계를 애써 그려보지만  

결국 선명해지는 것은 지글대던 아스팔트,

혹은 어둑하고 시린 온 세상 낙엽뿐이었다.


남방 하나 입고서 환히 웃던

사진 속 어느 가을을 들춰볼 때면

한 겹의 옷으로 충분했던 가을볕도

들꽃마다 고루 어질던 가을바람도

벅차게 청청하던 가을하늘도 생경해

어쩐지 나는 초라해졌다.


오래도록 고대하고 마주하는 선선한 기쁨은

찌는 듯한 밤더위와 빌딩 숲 속 골바람 사이

찰나의 아름다움이었고

타는 듯 마음을 쏟는 모든 존재는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이 가을의 한 자락이었다.


가을의 촉감이 희미해질 언젠가

구석마다 겹겹이 포개어 둔 나의 가을을 꺼내본다.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들어진 모든 것-

저마다 잠잠히 빚어진 사랑을 꺼내 입으며

어느새고 소리 없이 나를 찾아올 기쁨을 그린다.



이전 08화 그러자 우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