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를 지나고
가을로 접어든다.
만물은 겸허히 때마다의 절기를 살아내는 가운데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오묘한 경계를 애써 그려보지만
결국 선명해지는 것은 지글대던 아스팔트,
혹은 어둑하고 시린 온 세상 낙엽뿐이었다.
남방 하나 입고서 환히 웃던
사진 속 어느 가을을 들춰볼 때면
한 겹의 옷으로 충분했던 가을볕도
들꽃마다 고루 어질던 가을바람도
벅차게 청청하던 가을하늘도 생경해
어쩐지 나는 초라해졌다.
오래도록 고대하고 마주하는 선선한 기쁨은
찌는 듯한 밤더위와 빌딩 숲 속 골바람 사이
찰나의 아름다움이었고
타는 듯 마음을 쏟는 모든 존재는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이 가을의 한 자락이었다.
가을의 촉감이 희미해질 언젠가
구석마다 겹겹이 포개어 둔 나의 가을을 꺼내본다.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들어진 모든 것-
저마다 잠잠히 빚어진 사랑을 꺼내 입으며
어느새고 소리 없이 나를 찾아올 기쁨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