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오늘보다 어제가 되면 더 깊어진다.
난 어릴 적 추억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늘 바쁘셨고 주말이 되면 가족 모두 평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기에 주로 부모님과 하루 종일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던 기억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문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면 그저 신이 나 놀이터로 부리나케 뛰어갔던 기억 그리고 슈퍼에서 친구들과 돈을 나누어 라면 하나를 사 부셔 나눠 먹었던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 익숙했던 기억들이 내 어릴 적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사를 갈 때쯤 서랍 구석에 묵혀 뒀던 오래된 사진첩에서 잠시 잊혔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자주 놀러 가진 않았지만 그때 당시 사진 찍는 것이 취미였던 아빠는 그동안 놀아 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행복 해 하는 가족의 모습을 여러 장의 사진으로 남겨두려 하셨다. "아빠 잠깐 봐봐. 여기 좀 보고 웃어봐. 치즈." 처음 몇 번은 신난 마음에 실컷 사진을 찍었지만 끝없는 요청에 짜증을 냈던 적이 있었다. 놀기 바빠 한시가 급한 지금. 카메라를 들이대며 여기 좀 보라는 아빠의 성화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그만 좀 하라는 그 표정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그리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진첩을 넘기다 보니 그때의 기억이 나 자연스레 웃음이 났다.
시대가 좋아진 요즘 핸드폰은 연속사진 버튼 하나면 여러 장의 사진을 얻어 낼 수 있다. 아빤 조금 앞서가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위해 카메라 셔터로 연신 연속사진을 찍었나 보다. 엄마는 사진을 보며 아빠는 참 별 걸 다 찍어놨다며 꾸짖으셨다. 하지만 오히려 난 그 사진이 더 좋았다.
일상이었던 그날들이 수많은 어제의 추억으로 남아 인쇄되어 있는 사진첩을 보니 나도 생각보다 추억이 많은 사람이었나 싶었다. 그 많은 사진 속에서 그날의 감정과 장면을 문득 세세히 떠올릴 수 있는 사진들을 발견했다.
그 사진의 추억은 이러하다. 앞서 말했듯 일하시느라 바빴던 부모님과 가족여행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고 어린 나는 그게 마음 한편 서운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휴가 때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과 친구의 가족들이 함께 모여 몇 시간의 차멀미 한 끝에 넓은 바다에 도착했다.
햇빛은 강렬했고 요란한 색들의 파라솔이 즐비했으며 모래는 반짝였다. 구멍 뚫린 샌들 사이로 들어온 모래가 너무 뜨거웠지만 설레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한눈에 바다가 다 들어오진 않았지만 바람결에 느껴진
바다의 향기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한번 더 일깨워줬다.
무거운 짐을 이끌고 이리저리 옮겨간 끝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아빠가 어디선가 빌려온 빨주노초 무지개색 파라솔을 펴고 그 뒤론 커다란 텐트 하나를 만들어 주셨다.
그렇게 바다 앞에 우리 집을 짓고는 들어가 보라는 아빠의 말에 냉큼 텐트 안에 들어가 바다를 바라봤다.
텐트 안은 언제 더웠냐는 듯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고 바다내음이 텐트 안 가득 찼다. 간간이 들어오는 파리와 모기가 귀찮았지만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친구와 같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모래사장으로 나가 하루 종일 모래성을 쌓고 부시며 놀았다. 어둑해지고 나서야 엄마의 부름에 달려가 맛있는 고기를 배불리 먹고는 잠에 들었다.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을 하루 종일 담아내기 바빴다. 아빠의 수고 덕분에 그날의 이야기가 장면 장면 나뉘어 낡은 서랍장 안 사진첩에 고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사진은 과거를 생각나게 하고 그 사진이 오래된 이야기일수록 더 아련히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추억이 많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라
잊혀진 추억이 많았던 어른이었다.
잠시 잊혀진다고 해도 어릴 적 추억은 어느 날 여름 바다에서 지었던 모래성처럼 내 마음속에 단단히 지어져 있다.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만들어질 추억을 남기는 일은 어른으로 살아내기 참 외로울 때 위로가 되곤 한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어제를 마음속에 쌓고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작은 어제라도 기쁜 하루로 추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