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물욕이 많았다. 물욕의 대상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바뀌어 갔다. 화장품, 옷, 가방, 주얼리, 그릇, 가구 등등. 특히 결혼을 할 무렵에는 소위 말하는 '명품'에 눈을 떴다. 결혼반지를 고른다고 백화점을 들락날락했던 게 화근이었다. 나는 참깨 다이아는 내 스타일에 안 맞는다고, 쿨하게 백금으로만 된 걸로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짝이는 다이아가 쪼르르 박힌 웨딩밴드를 보며 금은보화를 보고 눈이 돌았던 알라딘의 원숭이처럼 나도 정신이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명품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가방과 주얼리를 열심히 넘나들며 나의 지갑을 얄팍하게 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예물의 정석이라는 샤넬 클래식 미듐에 꽂혔다. 당시의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그런 걸 사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꿋꿋하게 혼자 매장을 돌았다. 치솟는 부동산과 주식으로 너도 나도 돈 번 기분에 취해있던 코로나 시절, 명품 업계도 덩달아 호황이었고 내 돈 내고 물건을 사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사실 지나고 보니 화폐 가치가 떨어졌을 뿐인데 너도 나도 축배를 들던 시절이었다. 결국 몇 군데에서 실패를 하고 도산 매장에서 클미를 만나서 데려오게 되었다. 무려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애지중지하며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포장을 끌렀다. 매끈한 가죽의 자태가 몹시 아름다웠다. 짜릿한 도파민을 온몸으로 느끼며 가방을 감상하던 것도 잠시, 이내 끈적한 불쾌감이 밀려왔다. 내가 이걸 사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지만 그것은 원초적인 불쾌감이었다.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썼는데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이런 감정까지 동반되다니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출근 전 새벽 요가를 가서 온전히 내 몸을 돌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누워있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니는 요가원이 회당 만원 꼴이니까 샤넬백 하나면 요가를 천 번 할 수 있네.
가방을 사서 얻는 행복과 요가를 해서 얻는 행복은 질적으로 달랐다. 요가는 지속 가능하고 잔잔한 행복을 충만하게 느끼게 해준다. 소비로 얻는 행복은 그 순간에는 짜릿하지만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한 갈증에 시달릴 뿐이었다. 고로 그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쾌락이라 부르는 것이 맞겠다.
요가 천 번이면 주 5회씩 안 빠지고 가도 무려 4년이다. 어차피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가방 하나 살 돈으로 오래도록 촘촘하고 밀도 있게 행복한 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때 산 가방은 지금도 잘 들고 있다. 내가 깨달은 내용과는 별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