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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서점원 Aug 31. 2022

아파트먼트

2021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층엔 소년이 살고 또 그 아래층엔 소녀가 산다. 소녀는 어린 나이에도 길 고양이들의 밥과 물을 챙겨주는 캣맘이다. 그래서 소녀가 모습을 나타내면 온 동네 고양이가 모두 몰려들어 냥냥거린다. 덕분에 나도 출근길에 가끔씩 고양이들이 길을 막고 비켜주지 않는 행복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소년은 어딘가로 엄청 돌아다닌다. 특히 밤에 마주치는 일이 많은데, 내가 밤 9시에 퇴근을 해서 집에 도착할 즈음이면 항상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선다. 며칠 전 밤에는 퇴근 후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막 문을 열고 나온 아래층 소년과 딱 마주쳤다. 마침 소년의 집 바로 앞이었고, 벌컥 문을 열었던 소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끼에에엑, 씨발!”이라며 화들짝 놀랐다. 문을 열었더니 웬 시커먼 옷에 시커먼 마스크에 시커먼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아저씨가 떡하고 서 있었으니 꽤나 놀란 모양이다. 비명과 함께 욕을 내지르고 한참이나 얼어붙어 있던 소년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어휴, 죄송합니다. 너무 놀래서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사과를 하고는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캣맘 소녀와 아래층 소년. 이 아이들은 내 얼굴과 내가 사는 층수를 알지만 밖에서 따로 마주쳐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이 아이들의 얼굴과 사는 층수를 알지만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요즘엔 불이 나지 않는 이상 이웃간에 서로 모르는 척 지내는 게 더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 역시 아는 사람에게서 높은 확률로 발생하니까. 혹시라도 ‘이웃 사람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심어줄까 싶어서다. “믿을 만하다는 형용사가 사람이라는 명사 앞에 올 수 있나?” (*양영순, <덴마>, 네이버 웹툰)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는 내가 소년이던 시절에도 살았던 곳이다. 내가 소년이던 시절에는 열쇠를 챙기지 않아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면 앞집에 가서 엄마가 올때까지 기다리기도 했고, 집에 무언가 고장이 나면 아랫집 아저씨가 올라와서 고쳐 주기도 했으며, 윗집 할머니와 마주치면 귤 하나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이웃 어른들을 마주치면 꼬박꼬박 인사를 했고, 그들은 ‘000호 아들래미’라고 나를 기억해 주었다.


이런 추억이 아쉽다거나 요즘의 소년 소녀들의 예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건 어른들의 잘못이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다만 이런 위험이 도사리는 사회가 되어버린,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어른으로서 마음이 불편할 뿐이다. 출산과 육아, 양육. 돈도 돈이지만 그 이전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게 순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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