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넌 내게 전화했어.얘가 정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건가 싶었겠지.넌 물었어. 내가 어떻게 이런 마음을 먹었고, 왜 이렇게까지 그만두어야 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듣고 싶다 했어.
그 시점에 내 심정은 꽤 복잡했어.
사실 내게 퇴사는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어. 가족에 대한 미안함, 정년을 마치지 못하는 아쉬움, 패배자로 볼 시선에 대한 염려, 앞으로 삶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머리가 복잡했거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고 했지. 나중에 이 복잡한 마음들이 진정되고 풀려서 여유라는 게 생기면 그때 하겠다고...
어느덧 퇴사한 지 10개월이 되어가고, 나에게도 많은 사건과 생각들이 오고 갔어.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선 한바탕 일어났던 흙탕물들이 차분히 가라앉고 있는 느낌이 들어.
뿌옇던 물들이 맑아지면서 이제야 뭔가 보이는 듯해. 지난 일들이 조금 정리가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방향이 보이는 느낌이랄까.
이젠 말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지난날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이야기. 늦었지만 우선 너에게 답장을 하고 싶었고, 쓰다 보면 내 지난 이야기도 정리가 될 것 같았어.
굳이 지난 일을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고민한 것도 사실이야. 퇴사가 자랑처럼 들릴까 봐 말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의 전화가 기억났고 남겨져 힘들어하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나의 말들이 혹시나 너에게 닿아 작은 영감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한 거지.
고백하지만, 나도 내가 정말로 퇴사를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퇴사가 정답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부르짖긴 했지만 용기 없는 내게 퇴사는 남일이라 생각했지. 그래서, 퇴사란 단어는 습관처럼 내뱉는 불평이나 하소연에 들어가는 단어 정도인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