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힘들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어.
동료들도 좋았고 일에도 적응하고. 모든 것이 다 순조롭다 느낄 때쯤이었어.
내 안에서 자꾸 뭔가 꿈틀대기 시작했어.
'이대로 있으면 안 돼.'
그즈음. 모든 것이 좋았지만, 일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어. 물론 직접 민원을 만나 상대하는 일도 보람된 업무였지. 그렇지만 그 일로 내 마음을 채우긴 부족했어. 어느 정도 평온을 되찾으니 욕심이 나더라고.
난 일에서도 만족감을 얻고 싶었어. 하루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데, 이왕이면 만족감을 느끼며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 거지.
그땐 단순히 승진을 하면 만족감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 승진하면 업무와 지위의 양상도 바뀌니깐. 또 다들 승진을 원하는데 그것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
승진을 위해 부서를 옮기고 직전 부서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었어. 훨씬 바쁘게 더 정신없이 말이야.
근데, 정신없이 일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뭣 때문에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공무원이 되고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내가 왜, 뭣 때문에,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이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거지?'
일하는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어.
첫째는 돈 때문이었고, 둘째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었어.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봉급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공무원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남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어. 특히, 그때의 난 삶의 기준을 밖에서 찾았기에 남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마지막 남은 잎새 같은 내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이기도 했어. 그래서, 안정적인 생활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쉽게 놓지 못했지. 그게 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이유였지.
온종일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했던 이유가 돈과 타이틀 때문이라니. 그럼, 돈과 타이틀이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지도 생각해 봤어.
죽음은 인생에서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더라. 그래서, 죽음에 임박했을 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매월 받는 돈과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일까 하고 생각해 봤어.
대답이 뭐였을까? 'NO' 였어.
아직 현직에 남아있는 너에겐 불편한 말일거란 걸 알아. 알잖니? 나는 공직자라는 직업을 폄하할 생각이 없고 이 또한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너도 나랑 생각이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냐.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오해 없길 바라.
그저 나란 인간은 공직자로만 살다가 가는 인생이 왠지 후회가 될 거 같더라고. 이성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었어. 분명한 건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내가 있다는 거야. 오랫동안 현실적인 이유로 그런 나를 모른척하고 묵살해 왔고 그 덕분에 마음 무겁게 살았던 거니깐.
살아있으면 언제나 기회는 온다고 생각해. 그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 무슨 기회? 자유로워질 기회.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싶어 하지. 그건 인간의 본성이야. 이 기회에 내 본성대로 자유롭게 살아보자. 그런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어.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었어. 현실이란 이유를 들며 돈과 타이틀이라는 달콤한 사탕으로 본성대로 살고 싶은 나를 달래 왔단 생각이 들었어. 그럴수록 '나는 이 조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이곳 아니면 절대 안 된다. 여기서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을 각인시킨 거고.
그 누구 때문도 아니야.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혼자 괴로워했던 거지. 그걸 알게 된 순간, 이 감옥을 나가야 한다 생각했어.
'내가 만든 온갖 한계들을 걷어내고 자유롭게 살자.'
그러기 위해선 퇴사도 가능한 일이 돼야 했어. 그때부터야. 내가 진짜 퇴사할 수도 있겠단 예감이 들던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