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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26. 2024

바로 저 예민함.

바로 저 예민함. 비도 부슬부슬 내리는데 캐디에게 유난히 까다롭고 예민한 그를 보며 예쁜 그녀, 서연은 까마득한 1970년대 후반 그들의 첫 만남을 떠올린다. 그의 까다로움은 그때도 있었다.


쏴아 쏴아 무지막지 쏟아지던 비가 그친다. 갑자기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부슬부슬 이슬 같다. 서연은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에서 큰 맘먹고 산 우산을 접는다. 나무 손잡이와 꼭지가 매력적인 세련된 우산이다. 접어서 한 손에 드니 그 끝이 땅에 닿으며 자태가 우아하다. 역시 우산 하나에도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무교동 월드컵 클럽 앞 버스정류장이다. 서연은 집에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목을 쭉 빼고 버스가 오나 안 오나 무심코 보는데 저 멀리 걸어오는 여자와 남자.


헉. 그다!


척 봐도 알겠는 그의 모습. 새파란 티셔츠에 청바지. 균형 잡힌 몸매. 그러나 엉거주춤 어색한 포즈로 무교동 그 부슬부슬 비 내리는 널찍한 인도를 여자와 걷고 있다.


흥! 상관없다.


에잇 비라도 쏴아 쏴아 시원하게 쏟아질 일이지. 왜 벌써 멈춘단 말이냐. 주룩주룩 내려라. 나의 맘 깊은 곳 후련히 씻어주렴. 비야 쏟아져라. 마구 퍼부어라.


그에게 어울리지 않아. 흥. 저런 여자를 좋아한다고? 무언가 어색한 그 둘의 모습. 첫 만남일까? 소개팅? 미팅? 흥 아무렴 어때. 상관없어. 그렇게 여자나 만나고 다닌단 말이지? 


 서연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재빨리 자신의 모습을 점검한다. 허리가 날씬해 보이는 파란 티셔츠와 긴치마. 매력적 우산에 기대어 서 있는 그녀의 모습. 흠 괜찮아.


흥. 나를 보았을까? 봤을 리 없어. 나를 보았다한들 알아보기나 할까?


서연은 괜히 차분해진다.


모야. 저런 스타일의 여자랑? 전혀 어울리지 않아. 치렁치렁 저 긴 머리는 뭐야. 옷은 또 왜 저렇게 헤벌레~ 단정치 못해. 흥. 흥.


그래 그러라지. 나 또한 그에게 관심 전혀 없다고. 흥! 난 지금 남자를 만나고 그럴 때가 아니거든.


아, 그러나 그거 아니다. 서연은 며칠 째 그의 생각을 하고 있다. 엉엉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서연은 동아리 방에서 그와 또 마주치게 되었다. 오늘도 카세트 조작은 바로 그가 하고 있다. 처음 서연이 반했던 바로 그때처럼.


키가 크고 단정한 머리. 차가운 듯 따뜻한 눈길. 떡 벌어진 어깨.


 오홋 멋져. 눈에 탁 뜨일 멋진 모습에 영어까지. 함께 간 은경과 서연은 그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서연과 은경은 1학년. 그는 군대에서 복학한 3학년. 서연과 은경보다 보다 5살 위다.


쏼라쏼라...  틱틱틱... ,  쏼라쏼라... - ·  틱틱틱...  틀고  멈추고 되감고 고 멈추고 되감고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카세트에서 나오는 AFKN 뉴스를 제대로 다 받아 적을 때까지 끝없이 반복이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베테랑 그는 카세트 돌아가는 즉시 착착 적으며 우리 모두가 제대로 받아쓰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의가 없을 때 무조건 이 동아리 방에 와서 듣고 듣고 또 들으며 정확히 받아쓰려 애쓴다. AFKN 뉴스 리스닝 동아리. 서연은 그를 거기서 처음 만났다. 어쩜 저렇게 영어를 잘할까?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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