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자려고 자리에 누워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이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낯익은 끝번호.
재승오빠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서 벨이 열 번 정도 울릴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묻는다. 20년 만에.
" 남편은?"
"없어"
"아이들은"
" 남편이 없는데 아이가 있겠니?"
"돈은?"
" 없어"
"뭐 달라진 거 없이 한결같네 우리 경남이 "
"........."
"울었다면서 선주 누나가 전화했더라"
기가 막힌 기분에 미국 선배 언니인 선주 언니와의 통화 끝에 울어 버렸고 간만에 듣는 내 울음소리에 선주 언니가 재승오빠에게 전화했구나.
내 우는 소리에 전화해줄 사람이 있었구나. 왜 잊고 있었을까 재승오빠는 대학교 일 년 선배였고 텍스타일 디자인 전공자이면서 게이 교수님들과 여학생들이 말그대로 추앙하던 학생이었다.
아름답고 세련된 언니들 틈에서 붕 떠있는 나와 주영이를 귀여워했으며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를 가여워했나 싶을 정도로 예뻐했었다.
찍 호감의 축축한 마무리 시기에 반 지하방에서 퉁퉁 불은 만두였던 나를 일으켜 세워 잘 생각나지 않는 훈계를 했었고 비싼 유기농 딸기 6박스를 내 냉장고에 채워 주었고 허드슨강 산책로를 오래 같이 걸어 주었다.
술 마시고 돈 없을 때 찾는 번호 우선순위였으며 싫은 소리는 버럭버럭 해댔었지만 돈 내어 주고 갚으란 말 한번 하지 않았고 술 취한 우리에게 자신의 아파트도 내어주고 자신은 친구집에 가서 자고 새벽에 커피와 샌드위치를 넣어주었었다. 물론 학교에서는 분기탱천해서 눈도 안 마주췄지만.
나랑 주영이는 재승오빠의 그늘에서 그때그때 안락했었다.
그런 오빠였는데 난 왜 이십 년 동안 연락 한 번을 하지 않았을까.
" 왜 울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아. 울지 마. 우리 경남이 "
" 너 계란 28 기억나지? 그 새끼 만나볼래? 걔 아직 결혼 안 했어. 한 번 봤잖아 성준이 아파트에서 계란 프라이 28개 기억나지? 잘 나간다. 정년도 없어. 확 잡어 내가 밀어줄게."
난 어이없어 "닥쳐"라 했다.
"성준이 갈 거야 막 팔아먹어 냉장고 비워달라고 해. 그래도 괜찮아 네가 남자때문에 울 건 아니지. 말을 했었어야지 "
'여전하구나 재승오빠는,난 남자때문에 운게 아니야. 아저씨'
그냥 흘려들었다. 그래야 적당히 끝나니까.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