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문득 문득 아빠가 삶에 나타난다.
나의 인생을 살며 마주하는 수 많은 사물과 장소 사이에서 문득 아빠가 나타난다. 불현듯 찾아오는 아빠의 기억은 나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그리움을 안겨주기도 하며 미안함을 떠올리게 한다.
내 나이 32. 곧 서른살 중반을 바라보며 아빠와 함께 늙어갔더라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빠는 나의 든든한 배경이자 친구였고, 그 누구보다 묵묵히 나를 믿어주시던 안식처였기에.
그러한 아빠가 세상을 떠나 별이 되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평소엔 잊고 지내다(외면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마주하기에는 아직 너무 벅차다.) 문득 아빠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최근에는 우리 반 단합대회를 하는데 학급비로는 조금 부족할 것 같아 사비를 보태야하나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막상 내 사비를 쓰려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기 좋아하셨던 아빠의 마음을 생각하며 흔쾌히 10만원을 쾌척했다. “아빠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아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 이것이 내가 아빠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방식이다.
여전히 난 아빠가 그립다. 내가 광주에 내려가면 콧바람 숭숭 내고 엉덩이 실룩 거리며 부엌에서 제육볶음 만들어주던 아빠의 뒷모습이, 내가 라볶이가 먹고 싶다고 하면 집 앞 김밥나라에서 포장해와 검은 봉지를 툭 내려놓던 그 날의 아빠가 보고싶다.
아빠, 아빠가 떠난 그 나이 즈음 나도 아빠 곁으로 갈테니 나 마중나와줘요. 거기서 같이 늙어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