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천진난만하게) 저희 아빠 돌아가셨는데요?
교직생활 6년차, 첫 고3 담임을 하며 정신없이 달려온 2023년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시로 진학하는 구조로 인해 여름방학의 모든 날들을 생활기록부 작성에 할애하였고, 더 이상 학교가 아닌 사회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첫 발걸음에 애정과 응원을 담아 열심히 생기부 문장을 만들었다. 인생의 전부일 것만 같았던 6장의 수시카드를 결정하는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 끝나고 비로소 나는 한 숨 돌릴 여유가 생겨 브런치에 들어왔더니, 요새 글이 뜸하다며 나의 관심사를 묻는 브런치 알람이 나를 반겨줬다.
매일 야근하면서 혹시나 실수할까 확인 또 확인을 거듭하며 온갖 스트레스에 거북목이 될 것만 같았을 때 쯤, 신우회 선생님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학교 내에서 기독 신앙을 갖는 선생님들끼리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말씀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이 마저도 당일에 대입 상담때문에 식사 자리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카페로 뒤늦게 도착하여 서로 안부를 물었다. 요새 교직 사회의 분위기, 여름 방학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하던 중 겨울방학 계획이 있냐는 물음에 "저, 엄마랑 한 달동안 남미가요!"라고 신나게 답했다. 그 중 선생님 한 분이 "아버님이랑 안가구요?"라고 하셨다. 신우회 분들은 아빠가 돌아가신걸 다 아시지만, 순간 기억하지 못해서 혹은 내가 너무 젊어서 여과 없이 세상 무해한 어투로 물어보셨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너무나도 밝고 해맑게 "저희 아빠 돌아가셨는데요?(웃음)"라고 답했다. 순간, 당황스러워하는 표정과 얼어 붙은 분위기가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웃으면서 말하는 나 자신을 보며 조금은 내가 극복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 돌아가신지 2년이 지나고 3년차인데 이젠 내가 좀 받아들이고 있구나 라고.
돌직구로, 때로는 매우 조심스럽게 묻는 누군가의 말에는 전혀 타격감이 없다. 오히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많이 표현하고 잘해드리라고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순간에, 그 찰라의 순간에 떠오르는 아빠 생각은 나를 완전히 잠식시킨다. 하루는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우연히 누운 채로 다리를 꼬았던 적이 있다. 순간, 삶의 말미쯔음 호스피스 병동에 계셨던 아빠가 떠올랐다. 살은 빠질 대로 빠져버려 말 그대로 뼈 밖에 남아 있지 않던 아빠의 얇은 두 다리가 위태롭게 꼬여 있었다. 그 모습이 당시엔 '우리 아빠 마지막까지도 다리 꼬는 멋짐을 포기 못하네'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보면 엉덩이 살이 없으니 누워있을 때 엉덩이가 아프셔서 다리를 꼬아 나름의 공간을 만드시려는 아빠의 마지막 고군분투였다. 갑자기 아빠의 두 다리가 떠오르며 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어두운 밤을 참지 못할 그리움으로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난 직감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아빠는 내 마음 속에서 영원할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