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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노요코 May 29. 2021

아빠의 첫 항암치료

#3 2018.9-2020.6

아빠의 진단명은 위암4기이다. 4기라고 하면 전이가 일어난 상태이고 아빠는 복막에 전이가 되었다고 한다. 복막이란, 배에 있는 얇은 막으로 장기를 감싸고 있다. 복막에 전이가 되었다는 것은 암세포들이 씨앗이 뿌려져 있다고(파종) 표현이 된다. 복막에 파종되어 있는 암세포들이 혈액을 타고 온 몸으로 이동할 수 있고 워낙 좁쌀처럼 퍼져 있다보니 항암제로 치료되기 힘들다. 아빠가 진단 받고,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카페에도 가입했고, 복막전이에 대해 검색하면 할 수록 절망적이었다. 복막전이의 경우 기대여명이 거의 6-10개월이라고 나왔기 때문이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불안하고 심장이 뛰기에 나중에는 검색하는 것도 멈추고 아름다운 동행 카페도 들어가지 않았다.


담당교수님은 서울대학교 양0광 교수님이었는데 위암분야에 있어 손꼽히게 인정받는 교수님이시다. 교수님께서 꽤 긴시간동안 아빠의 CT사진을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고 결론은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복막에 전이가 되어 수술은 불가합니다. 우선 항암치료를 하며 암세포의 크기를 줄여봅시다”였고, 아빠는 혈액종약내과로 변경되어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수술이 아닌 연명치료 수준의 항암치료가 최선의 방안이라니. 서글픔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2-3기 정도로 알았다가, 4기 그것도 복막전이라니. 왜 우리 아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지. 아빠가 술을 많이 드시긴 했었지.”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께서는 조금은 차가우셨지만 실력이 느껴지는 포스가 있으셨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대학병원 체계 자체가 한 교수당 담당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기에 진료시간이 짧을 수 밖에 없고, 당연스레 해야 할 말들만 나누게 되니 차가운 기운이 흐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교수님께서는 1차 항암약으로 먹는 항암제인 젤로다와 맞는 항암제 옥살린을 처방받고 본격적인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젤로다는 하루에 두번 알약으로 먹어야 하고, 옥살린은 3주에 한번씩 항암링겔 주사를 맞아야 했다. 흔한 당뇨나 고혈압 등 질환이 없으셨기에 약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고 아프셔도 약을 안드시려고 했던 아빠였는데, 이제는 약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셨다. 그것도 약 중에 가장 독하다는 항암제라니.


우리가족은 저녁 10시마다 아빠를 향한 중보기도를 하기로 하였다. 서로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각자의 자리에서 아빠를 위해 기도하였고 기도의 덕분이었는지 아빠는 큰 부작용 없이 항암치료를 잘 받으셨다. 아빠를 지켜보는 자식의 입장으로서, 가장 불안하고 힘들었던 시기는 CT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정해진 항암싸이클이 끝나면 CT를 찍으셨고, 호전되었는지 혹은 악화되었는지를 알려주셨는데 CT 결과를 안내받는 진료 전날에는 정말 불안하여 잠을 못 이뤘었다. 온갖 좋지 않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하다못해 나도 이렇게 불안한데 당사자인 우리 아빠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싶다.)


수 없이 많은 CT를 찍으셨고 그 때마다 결과가 좋았다. 호전되고 있다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아빠도 정상생활을 유지하며 지내셨다. 식사도 잘 하시고 오히려 나에게 우스갯소리로 “남들은 항암치료하면 식사를 잘 못해서 살이 빠진다는데 아빠는 살이 더 쪄서 다이어트 해야 돼”라고 하셨다. 그렇게 약 2년동안 같은 항암제로 치료를 하던 차에, 아빠가 소화가 잘 안되시고 식사를 하면 구토를 하시기 시작했다. 교수님께 증상을 말하고 지켜보던 차에 교수님께서 어느 날, 뜻 밖에 심장이 내려앉는 말씀을 하셨다.


“기존 항암제가 더 이상 효과를 못 내는 것 같아요. 내성이 생긴 것 같으니 새로운 항암제로 치료를 해야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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