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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Oct 22. 2023

봄이 하는 일

가만히 지켜보기

작년 봄, 구청에서 텃밭 상자와 상추 모종을 받아 처음 옥상 텃밭을 시작했다. 올해도 그냥 지나가기 아쉬워 씨앗을 사서 작년에 사용하던 텃밭 상자에 뿌려주었다. 작년에 사용한 흙은 양분이 다 빠져나가 새 흙을 넣고 밭을 갈아주는 게 좋다고 하던데, 나는 애를 쓸 자신이 없어서 지난해의 흙에 씨앗만 뿌려 놓고 물을 주고 마냥 새싹이 나기를 기다렸다. 마른땅에 티끌만 한 씨앗이 과연 자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느 날 작은 싹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싹의 하루는 매일이 다채로웠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새싹의 표정을 놓치는 것이 아쉬워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옥상에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엔 매일 2L 생수 두 병에 수돗물을 가득 담아서 올라갔지만, 봄인 요즘 하루 걸러 하루 비가 오는 바람에 나는 할 일이 없어졌다. 텃밭 상자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오늘은 어떤 변화가 있나 지켜볼 뿐이다. ‘그저 봄이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봄이면 화창하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씨를 투덜거렸는데, 봄이 하는 일을 이해하고 나니 봄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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