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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책, 실패 아니고 배움의 기회였죠!

사람들 앞에서 김화숙이란 사람을 사람책으로 소개한 후의 단상

by 꿀벌 김화숙

P 선생님!


감사합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4.16합창단 정기 연습 날이라 엊저녁엔 못하고 화요일 아침에야 답장합니다. 따뜻한 맘이 담긴 글과 저를 찍은 사진, 그리고 제 강의에 대한 피드백까지 보내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사람책’으로 말하며 함께 한 건 제게 영광이요 큰 배움이었습니다.

“사람책 선생님들께서 당황하시거나 언짢으셨을까 걱정이 되네요. 김화숙 쌤 너무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다른 참여자들은 많이 감동받고 좋아했어요. 다소 시간이 부족해서 더 이해할 기회가 부족한 것이 아쉽습니다.”


샘의 편지 중 가장 인상에 남은 대목입니다. 제 안에 조금 남아있던 아쉬운 맘조차 싹~~ 사라지게 했어요. 위로와 지지의 말씀 감사해요. 사람책 현장에서 그 중년 남성 때문에 제가 살짝 당황한 건 사실이예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놀랍더라고요. 참여자 20여 명 다 50대 이상인데, 그중 7명이 남성. 성별 불문 몇 사람은 완고할 수 있다,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다, 생각하며 갔는데,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죠.

제가 미소로 받아 넘겼지만 설득이나 설명으로 통할 상황이 아닌 거 알잖아요. 자기가 보는 관점 말곤 인정하지 못해, 자기만이 공정과 중립의 기준인 양 하는 장황한 말들, 결코 낯선 모습은 아니었어요. 이해되고말고요. 이 사회의 단면을 확인하는 현장이라 재미있었는데, 시간 부족이 너무 아쉬웠어요.


“공익활동이라길래 중립적일 줄 알았는데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람들을 모셨군요.”

“저는 정치보다는 봉사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강사님들은 정치적이라 좀 실망했습니다.”

그분의 주장을 다 옮길 순 없지만 이런 요지였죠. 제가 부드럽게 답했잖아요. 정치 아니라는 그 의견도 하나의 정치적 관점이라고요. 제 사람책 제목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맘에 안 들었던 거 같죠?

그 자리에서도 그랬고 나중에도 저는 정희진 작가님 생각이 자꾸 났어요. 대중 강의에서 이런 식의 공격이나 질문을 받으면, 그는 비슷한 헛소리 질문으로 되돌려 주기로 유명하잖아요. 대답하기 어려운, 말도 안 되는 질문으로 말이죠. 책에서 읽을 땐 와!!! 멋지다 했는데,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해 보니 순발력이 쉽지 않더군요. 저는 그 정도의 내공과 배짱이 안 되는 거죠.


샘은 저를 위로하시려고 참여자들이 나중에 들려준 피드백을 적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개인의 일이 정치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며, 이게 정말 사람이 책이구나를 느낌.”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것!!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함.” “열정 넘치고 다재다능하신 멋진 분.”

현장에서 제가 들은 목소리도 비슷했어요. 특히 여성들은 제게 열광한다는 느낌도 받았다면 과한가요?

그날 돌아와서 저 스스로를 칭찬해 주었답니다. 시작할 때 저야말로 50+ 중년을 위한 사람책으로 제격이라고 제가 아이스브레이킹 했듯, 저를 토닥여주었어요. 과거엔 나이든 남성한테 듣기 거북한 소리를 들으면 제 가슴이 벌렁거리고 주눅들기 잘했거든요. 남성의 생각에 잘 맞추는 여성이 ‘지혜롭다’는 세뇌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건 사기였어요. 자기 목소리로 살아야죠. 어차피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 줄 책은 이 세상에 없고요.


제가 아쉬운 건 딱 하나, 센터에 혹 제가 엇박자를 냈거나 누를 끼친 건지, 그걸 모르겠다는 점이었어요. 제가 센터를 알면 얼마나 알았겠습니까. 여성의 목소리를 낼 게 분명한 저를 섭외한 걸 보면 신뢰가 갔으면서도, 그 중년 남성 때문에 잠깐 찜찜했더랬어요. 센터가 그런 식은 아닐 텐데, 수위 조절이니, 골고루 만족시켜야 한다느니, 그걸 알 수 없어서 말이죠.

제가 ‘공공’이니 ‘공익’이란 말의 진의를 깊이 신뢰하지 않나 봐요. 그 중년 남성의 반응 때문에 제가 농반진반으로 마무리 발언을 했죠. “아, 제목을 너무 쎄게 뽑았나 봐요!” 그렇긴 했던 가봐요? 샘들도 참여자들도 다 웃음을 터뜨렸으니까요. 식사 후에 제가 샘들을 포옹하며 앓는 소리를 했더랬죠. “말아 먹었나 봐요~~ 저보고 정치적으로 편향됐대요. 실패죠? 흑흑흑.”

이게 뭡니까. 진짜 재미는 그때부터였어요.


센터 샘들이 저보고 “실패”란 말 쓰지 말라고, 말이 안 된다고 폭풍 지지하셨죠. 제 진의를 다 알고 공감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어요. 여성단체랑 우리집 빼곤 내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게 ‘안전한’ 공간이 없었거든요. 언제라도 ‘수위조절’ 해가며 말하고 행동해야 욕을 덜 먹는 현실이었죠. 문제는 제가 그렇게 살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람책 이야기도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떠들었고요.

아하! 최소한 센터에 이런 분들이 일하고 있었구나, 확인하는 기회였어요. 제 맘에 연대감이랄까 동지애가 폴폴 솟았거든요. 지난 토요일에도 그랬어요. 센터 교육으로 안산 416 기억교실이며 단원고 걸을 때 센터장을 비롯해 여러 분 오셨죠. 같이 걸으며 인사하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완전 힘 받고 연결되는 시간이었어요. 에디터로서 글 쓰며 그동안 느낀 ‘불안’내지 ‘불편’이 많이 해소되면서, 좀 더 내 목소리로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활동가요 작가로 살아 볼수록 2030페미니스트들이 느끼는 ‘안전한 공간’에 대한 갈증을 더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저 역시 내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낼 곳이 없더라는 자각 때문에 줄기차게 글을 쓰고 책을 쓴답니다. 올해 에디터로 글을 쓰면서도 과연 내가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내도 되는지, 본능적으로 계속 저울질한하게 되더라구요. 누군가의 검열을 의식하며 수위조절 해야 하는 말도 글도 너무 재미없잖아요.

이번 일로 제 목소리로 말하고 살라는 성원과 지지를 확인했어요. 맞죠? 끝까지 저를 챙기시는 P 선생님 감사해요. 사람책 기획은 제게 말할 기회이자 사귐과 연대 기회였어요.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를 날것으로 들었다는 게 감사해요. 다시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노련하고도 재미있게 멋지게 하고 싶다는 도전을 받았어요. 또 불러주시길요.

샘 말씀대로, 실패 아니고, 죽 쑨 것도 아니고말고요.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배움의 기회였어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불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덕분에 저는 잘 버틴 저를 이렇게 글쓰기로 돌보고 있나 봐요.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쓰는 작가, 그 꿈은 결코 책상 머리에서 이루어질 수 없잖아요. 사람책은 좋은 공부 기회였어요.

P 샘의 친절과 호의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이상! 자기 돌봄의 글쓰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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