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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탁 칼럼니스트 May 02. 2020

[석혜탁 칼럼] 친구 부모님께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며

- 문득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스친다.

[석혜탁 칼럼] 친구 부모님께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며

- 문득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스친다.


소싯적 때부터 절친한 관계를 이어오던 친구 놈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알고 지낸 세월만 벌써 20여 년. 그야말로 죽마고우다. 


어릴 적 동네 친구다 보니 그의 아버지, 어머니도 필자를 많이 예뻐라 하셨다. 

(심한 말썽꾸러기였던 시절, 우리 때문에 속을 많이 태우셨음에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예전에는 학원을 가다가도, 친구랑 놀러 가다가도 이따금씩 친구의 부모님을 마주치곤 했다. 사춘기 시절 조금 늦은 시간에 철없이 쏘다니다가 본의 아니게 친구 어머니께 ‘발각’이 되기도 했더랬다. 그럴 땐 필자 어머니에게 전화한다면서 빨리 들어가라고 하셨다. 

사춘기 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부모님들의 견고한 동맹체제. 우리로서는 난공불락이었다. 


20대 초반만 해도 가끔씩 뵙기도 했는데, 그 이후에는 각자 거주지도 달라지고, 눈앞의 것들을 쳐내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진로 고민하느라, 취업 준비하느라, 회사생활 적응하느라 친구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갔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의 부모님인데도 말이다. 


친구의 청첩장을 받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부모님의 존함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잘 계시지?”라는 말이 무심코 입에서 나왔다. 나도 모르게 뭔가 울컥한 감정이 샘솟았다. 인사를 제대로 드린 적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실로 불가해한 감정이었다. 


결혼식 당일. 

친구는 늠름하고 훤칠한 모습으로 하객을 맞이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잘생겼었다.)


부모님께 큰절을 한다. 

사춘기를 같이 보냈던 녀석이라, 마음으로 큰절을 같이 올린다.


피로연.

신랑과 신부는 서로의 지인을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 모습이 참 예쁘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귀하디 귀한 자식들을 친척들에게 보여주느라 분주하다.


멀리서 친구의 부모님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아직 필자의 테이블에 오기 직전, 아버지께 먼저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멀리서 온 손님들을 챙기느라 분망한 그 상황에서 친구의 아버지는 내 손을 꽉 잡아주셨다. 그것도 꽤나 오래. 어머니는 어릴 때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열네 살 사춘기 소년에게 보냈던 웃음을 그대로 전해주셨다. 


그들의 눈엔 필자가 아직도 중학교 교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철부지로 보이지 않았을까. 필자의 어머니 역시 할머니 장례식 때 조문을 하러 온 어릴 적 친구들을 보고는 아이들 대하듯 하셨으니.



자주 인사드리지 못했다는 마음, 그리고 그 세월만큼 변화된 어른들의 모습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럼에도 이날은 경사 아니던가. 축하 드린다, 친구 놈이 오늘 정말 멋지다는 말을 연이어 날린다. 


아버지께서는 필자의 손을 금방 놓아주지 않으셨다. 그 온기가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10년은 더 된 것 같다. 그 사이에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는 혼주로서 두 번의 결혼식을 치렀다. 아들, 딸은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필자가 사춘기 소년에서 30대 중반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니, 당연히 부모님들도 그만큼 나이가 드시는 게 당연할 터. 


문득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스친다.


내 친구 놈들도 오랜만에 우리 부모님을 보면, 세월의 흐름을 새삼 느끼겠구나. 우리 부모님 역시 많이 늙으셨겠구나.


친구의 부모님을 보며 새삼스레 나의 부모님을 마음으로 불러본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부족한 자식이요, 친구 부모님들께는 여전히 까까머리 중학생이다. 


나이가 드나 보다. 

다이얼을 누른다.


석혜탁 sbizconom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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