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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Jun 25. 2020

청, 조선,일본, 유럽의 변화와 청과 조선의 멸망

01. 서론, 유럽의 계몽사상과 조선의 실학

서론

"그때 우리 선조들이 이렇게 했더라면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가정은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오류를 거울 삼아 미래에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현재의 방편을 찾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다. 일본과 구미는 흥했고 청나라와 조선은 망했다. 전자는 왜 강한 나라가 되었고 후자는 왜 망해야 했는 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한반도의 분단과 일본의 조선 강점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사대교린

한반도는 태평양과 대륙에 끼어 있는 반도이다. 조선이 건국할 무렵에는 대륙에 명나라가 있었고 태평양에 있는 일본은 한나라로써의 명목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만주에 여진족이 있었으나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 형편이 아니었다. 명나라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나라였다. 조선은 사대라 하여 명나라를 섬기고 주위의 약한 종족들과 교린 하여 자국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륙에 있는 나라가 항상 성하지도 않았고 교린 국가가 언제나 약한 체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대 국이 약해지고 교린 국이 강해지면 조선은 침략을 당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좋은 예이다. 결국 사대 국 청이 약해지고 교린 국 일본이 강해지자 조선은 망했다. 


제1장 유럽의 계몽사상(Enlightenment)과 조선의 실학


17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는 계몽사상이 발달했다. 근대문명의 시작이었다. 온 세상이 구미 중심으로 바뀐 다는 신호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서는 실학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괄목할만한 교류 없이 새로운 사상이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동시대에 발달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인류는 세월이 흐를수록 누구한테 꼭 배우지 않아도 발달하는 모양이다. 


중세기의 암흑시대, 르네상스, 종교개혁을 거친 유럽은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맹종하지 말고 모든 사회, 자연현상에 대해서 "왜(Reasoning)"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로 인해서 인권, 자유, 평등사상이 등장하고 국가권력이 군주에서 민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연현상을 실험으로 증명하려고 노력 하기 시작했다. 


1712년에 토마스 뉴 코멘은 스팀 엔진을 발명했다. 그러나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1776년에 제임스 왓트가 실용화에 성공했고 이것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다. 같은 해에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을 출간했다. 대량생산이 가능 해졌고 자본주의가 발달했다. 좀 더 큰 소비시장과 원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이 필요했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발달하고 식민지 시대가 열리게 된다. 


만유인력으로 유명한 뉴턴은 초창기의 계몽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종교에 맹종하지 말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것을 당부하는 강연을 하면서 계몽사상을 전파했다. 그는 1686년에 수학의 원리를 출간했다. 실학의 할아버지라고 하는 유형원이 반계수록의 집필을 마친 지 16년 후였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것은 100년 후인 영조 때 이루어졌다. 


조선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중반에 깔보던 두 교린 국가의 침략을 받아 극도로 피폐 해졌다. 특히 7년 동안 계속된 임진왜란은 농토의 66%를 못 쓰게 만들었고 인구가 전쟁 전의 2/3가 되었다. 두 전쟁 이후 재야의 많은 학자들이 개혁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의 복지와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실직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 즉 실학을 통치에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유형원은 윤리도덕만을 강조하고 돈 버는 행위를 천시하는 성리학이 망국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글공부만 하는 선비를 우대하고 실제로 생산에 종사하는 농부, 상인, 장인을 천시하는 제도로는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에 조선의 지배계급은 전인구의 2%에 해당하는 양반이었다. 그리고 약 40%가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노비였다. 양반의 농토는 노비들이 가꾸었고 수확은 양반의 차지였다. 많은 백성들은 지주의 땅을 빌려서 농사짓는 소작인이었다. 유형원은 농사짓는 사람이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에 흙을 묻히지 않는 양반이 토지를 소유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양반이 특권이었던 교육을 모든 국민이 받도록 하라고 했다. 과거제도를 폐지하여 인재 등용의 풀을 늘이라고 제안했다. 노비제도를 점차적으로 폐지하라고 했다. 시대에 너무나 앞서가는 이상주의자의 주장으로 보였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유럽의 계몽사상과 비유할 수 있는 적시의 현명한 생각이었다. 


변산반도에 유형원이 18년에 걸쳐서 반계수록을 집필했던 정자가 잘 보존되어 있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절경이다. 가족과 함께 가서 아이들에게 뉴턴과 동시대에 유형원이 반계수록을 집필했다고 일러 주면 어떨까?


1689년, 영국의 John Locke은 사회계약론을 발표했다. 사람들이 통치자와 자신들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줄 것을 계약하고 만약에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통치자를 바꿀 권리를 사람들이 가진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룻소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평등사상과 다수결 등의 이론을 발표했다. 1776년, 미국의 토마스 제퍄슨, 벤자민 프랭클린등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은 유럽의새로운 사상의 영향을 받아 세계에서 처음으로 삼권분립을 원측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 했다.  1789년, 자유 평등 사상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국민들은 왕정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프랑스 혁명은 종래의 왕정을 무너트리는 데는 성공 했으나 독재자 나포레옹을 등당하게 했다. 


실학은 유형원에서 실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이익이 승계하고 정약용이 집대성했다. 정약용은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 못지않게 다재다능했다. 학문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한 사람이 여러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정약용은 백성이 군주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군주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다. 부락의 장은 부락민들이 뽑고 고을의 지도자는 여러 부락의 장중에서 선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향 식의 민주적인 발상이었다. 토지를 소 단위의 공동체가 소유하여 수확을 나누어 갖은 사회주의 적 공동농장 제도를 제안했다. 


청나라 북경을 여행하면서 조선의 뒤떨어짐을 깨닫고 상공업을 발달시켜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다고 주장했던 실학자들을 북학파라고 한다. 박지원은 청나라 건륭제의 여름 별장에 다녀오면서 쓴 여행기, 열하일기로 유명하다. 그는 "근본 즉 도덕보다 밀단 즉 실용이 더 중요하다"라고 전제하며 상업과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장려할 것을 건의했다. 화폐사용을 주장했다.  소비를 해야 생산이 증가한다고 한 박지원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연상하게 한다. 홍대용은 천문과 수학을 공부했고 지구지전설을 주장했다. 8세 이상의 모든 백성들을 교육시킬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계급과 국가 형성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신라중심의 국사에 반론을 폈고 발해와 신라가 병존했던 시대를 남북조 시대라고 하자고 했다. 


정말 아까운 인재들이었고 버려서는 안 될 생각들이었다. 그들의 사상이 경이롭게 들리는 이유는 조선이 그들의 생각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남양주에 가면 정약용 생가와 실학박물관이 있다. 두문 머리, 수정사도 근처에 있다. 모두 절경이다. 한국사람이면 꼭 가봐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조선에도 이런 분들이 이런 생각을 했었는 데 모두 버려져서 나라가 망했다고 일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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