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적 사물 : 가을 >
연못은 제 얼굴을 비추는 일에 서툴러
늘 하늘과 구름을 먼저 품는다
딱새는 물 위를 맴돌며
아무 말 없이 기쁨을 풀어놓는다
코스모스는 바람 속에서
스스로의 시간을 키우고
은행나무는 햇살 안에서
고요한 변화를 고한다
빛을 좇아 날아가는 산누에나방은
눈부심을 닮았고
귀뚜라미 울음은 낯선 길에서도
발걸음을 지킨다
비는 세상을 씻기며 사랑을 가르치고
풀은 밟히면서도 다시 일어나
끊임없이 푸르름을 되새긴다
억새는 길을 따라 흔들리고
갈대는 달빛 따라 노래한다
벼이삭은 옹골차게 영글고
만월은 어둠을 환히 연다
감은 실한 속내를 드러내고
알밤은 숲으로부터 구르고 굴러
가을을 채운다
잎은 제때가 되면
우.아.하.게.
떨
어
져
.
.
.
흔들림 없는 순환에 합류한다
작은 것들은
제 할 일을
묵.묵.히.
하
라
고
.
.
.
남기고 간다
뒷산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목록을 읽습니다.
자연은 묵묵히 제 할 일을 이어가는 모습을 가르칩니다.
낙엽 하나 떨어지는 순간에도 제때의 우아함이 있고,
풀 한 포기도 아침 물기에 다시 일어서는 힘이 있습니다.
가을은 요란하지 않게 알려줍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제 몫을 다하며
제 길을 가는 것만으로도
충
분
하
다는 것을요.
오늘만 있는 것처럼 묵묵히 가보려 합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22)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