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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타샤 Oct 20. 2021

1-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겐 모로코 여행을 권하세요

석류


어릴 적 시골에 가면 몇 집 건너 한 그루씩 담벼락 뒤에 석류나무가 있었다. 지저분한 붉은색에 두어 대 맞은 것처럼 조금 일그러진 석류들은 악마처럼 삐쭉한 뿔도 있었다. 더 이상 씨를 품지 못하고 온 몸이 갈라지는 것은 마치 외계 생명체가 알을 품고 부화하는 모습 같아 불쾌했다. 호기심에 괴생명체를 따서 반을 쪼개어 보면 작은 씨들이 매끈하고 영롱한 보석처럼 아리따웠다. 그리고 그 보석들을 한 움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으—-셔”



시큼함에 감기는 눈을 자꾸만 떠보려 해 보았다. 눈을 감으면 질 것 같지만 감지 않을 수 없었다. 윙크를 한 채 입안에 고인 흥건한 침을 간신히 삼키고 씨를 골라내 퉤 하고 뱉었다.


 

엄마의 정수리가 보일만큼 자란 어느 날 큼지막한 게 신기해 샀다며 엄마는 관능적인 자주색 석류를 내밀었다. 석류 옆구리에 붙은 스티커에는 자그마하게 이란(IRAN)이라고 쓰여있었다. 중동에서 날아온 석류의 맛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얘는 저 멀리 중동에서 왔는데……’ 엄마와 마주 앉은 침대와 텔레비전 사이가 왠지 전보다 좁게 느껴졌다.

 

나의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던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가 되어도 종종 떠나고 싶은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더운 나라에서 만난 여행자가 내게 모로코 여행을 권했다. 사진과 글로 접한 모로코는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의 문화가 척박한  위에 오랜 세월을 따라 고스란히 스며든 곳이었다. 그러니까 이국적+이국적+이국적=초이국적인 나라 것이다. 항공권 프로모션의 최저가를 따라 주로 휴양지만 함께 했던 남편을 오랜 시간 설득해 신혼 여행지로 모로코를 넣을  있었다.




 모로코 여행 첫날 회색의 유령도시 같은 카사블랑카에 떨어졌다. 호텔을 찾아가는 길 해가 빨리 저물고 있었다. 다급해진 마음으로 남편과 나는 손을 꼭 잡은 채 억지웃음을 짓고 복화술 하듯 대화했다. "여기 왜 이렇게 삭막해." "다 폐허 같아. 개 무섭네." 호텔 앞에 다다랐을 무렵 해는 이미 사라졌고 거리 위엔 흑인들의 하얀 눈동자와 신호등 불만 반짝이고 있었다.  더 이상 무섭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내일 되면 좀 낫겠지. 근데 길은 잘 모르니까 오늘 저녁 그냥 호텔에서 먹는 게 낫겠다. 그렇지?”

 

다음 날 해가 밝게 비춘 들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생기 있게 살아나지 않았다. 곧 기차를 타고 도착할 (사진으로 본) 마라케시는 생기가 넘칠 거라고 남편에게 말하는 척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필  해가 떨어지고 도착한 리얼 마라케시는 무법천지였다. 구시가지인 메디나로 가는 시내의 수많은 차들 사이 생뚱맞게 진짜 말이 끄는 마차가 여기저기에서 도로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길가엔 예상보다 덩치  아랍인 남정네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제야 한국에서  곳까지 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낮에 도착했다면 다른 인상으 다가왔을지 모르겠다만 어둠이 내린 , 택시  룸미러에 비친 기사님의 다크서클이  짙어 보일 뿐이었다. 불현듯 영화 테이큰에서 인신매매단의 “굿럭이라 말한 허스키 보이스가 머릿속에서 윙윙 돌기 시작했다. 잘못 기입된 주소를 향하던 택시를 보내고 어렵게 다시 잡은 택시 역시 메디나 주변을 뱅글뱅글 돌아 의심병이 제대로 도졌다. ‘이런 데서 실종되면 시체도  찾겠네.’

 

거리 구석의 오줌 냄새, 오토바이의 희뿌연 매연, 카펫을 짊어 맨 당나귀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 보면 길을 알려주고 돈을 요구하는 행인, 그냥 돈을 요구하는 걸인이 가는 길을 막았다. 마라케시 구시가지의 첫인상은 혼돈의 도가니탕이었다.


남편의 모로코 임시 가이드로써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만 심장이 터질  같았다. 뒤늦은 후회의 눈물이 찔끔 나와 간지러운 눈을 만지는  슬쩍 닦아냈다. 그리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캡처해놓은 한국 대사관 번호를 몰래 들여다보았다. ‘이게 무슨 소용이야.’ 모든  어지러워져 이성을 잠시 잃고 조용히 말했다. “ 여보, 생각보다 여기 너무 무섭네. 미안해.”유일하게 쓸모 있는 넓은 어깨를 장착한 남편이 이를  깨물고 나를 째려보았다.



 

마중 나온 호스트는 친절해 보였지만 좁은 길에 무리 지어있는 현지인들의 눈빛은 친절하지 않았다. ‘호스트랑 한패일 수도 있어.’ 위급한 상황이 생기거든 잘 도망가기 위해 주변의 상징적인 것들을 외워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간판도 없고 어두컴컴한 미로를 통과하며 돌아온 길을 기억하길 점차 포기했다. ‘여기에 길이 또 있어?’ 놀라는 것도 지겨워질 즈음 도착한 숙소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그래도 한패 일지 모르는 호스트의 호구 조사를 슬쩍해보고는 부실해 보이는 객실 문의 잠금장치를 한참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다행히 영화에 나오는 위험한 상황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거리가 적응이 돼갈 무렵에도 구글맵에 나오지 않는 좁은 길 위에서 국제미아가 될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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