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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나 Sep 15. 2020

서른 살의 캄캄했던 밤

2008-10 서른  살의 캄캄했던 밤 (장지에 연필/2018)


잦은 이사를 했던 나는 내가 머물렀던 수많은 공간들에 관한 이미지가 늘 머릿속에 맴돌곤 한다.

요즘 그 공간들을 하나씩 꺼내어 드로잉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그 이미지의 출현이 조금은 줄어 든다.


도시생활을 하던 내가 내 나라를 떠나 서른 살에 발 디딘 곳은 너무나 자연 친화적이고, 새까만 밤하늘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 뽐내는 곳이었다. 학기 첫 주에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다가도 마지막 남은 친구가 나가려 하면, 나는 바로 가방 챙겨 급히 그 친구 따라 나 서기 바빴었다.  


며칠 동안 나를 관찰했던 줄리아가 급히 짐 챙겨 뒤따라 나오는 나를 보며 혹시 무서워서 그러냐 물었고, 나는 그렇다 답해주었다. 그녀는 하늘에 별도 있고, 벌레들도 날아다니고, 머가 무섭냐고 웃었다. 다음날 아침 내 스튜디오 책상에는 등산용 헤드 조명이 놓여있었다. 줄리아가 밤에 무서우면 머리에 끼고 기숙사로 걸어가라며 두고 간 그녀의 마음이었다.


그 밤길을 그녀의 마음과 함께 걸으며 기숙사로 돌아갈 때면, 지하에 있던 석진이의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도 묘한 안심을 주곤 했었다.


이맘때 늦은 가을밤의 깊이감이 느껴지고, 코끝이 시려질 때면 어김없이 저곳이 그리워 지곤 한다. 고요한 밤길의 풀내음과 쏟아질 듯 밤하늘의 별들이 함께 해주었던 내 서른 살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


#서른살 #밤 #가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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