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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나 Sep 15. 2020

서른 살의 방


2009-10  서른 살의 방  (장지에 연필 / 2018)



결혼식 이틀 후 캐나다로 날아가 원룸을 구하고 최소한의 도구를 갖춘 신혼방을 꾸렸다. 몇 개월 후 눈물 쏟는 신랑을 뒤로하고, 미시간 학교에 도착한 나는 2인실 기숙사에 들어가 1년을 보냈다. 방학에는 캐나다에서 김치를 담갔고 신랑 룸메 이틀들에게 밥을 해주는 아줌마였고, 학기가 시작되면 미시간에서 학생으로 지냈었다. 대학원 2년 차에도 조금이나마 저렴한 2인실을 신청했었다. 가을 새 학기에 학교에 도착한 내게 배정된 방은 1인실이었는데, 런더리 룸 바로 옆에 있는 기숙사에서 제일 작은 방이었다.


학교 내에는 게스트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고, 그들의 방문 후 나오는 침구들을 세탁해서 정리하는 일을 나는 했었다. 그 일 때문이었는지 내게 1인용 작은 방이 배정된 거라 생각했었고, 예상치 못한 선물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들뜨며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가 조용한 주말이면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하루 종일 방에서 미드 보며 먹고 뒹굴었다. 차도 없이 늘 학교 안에서만 보내던 내게, 저 공간은 나만의 놀이터인 동시에 숨고 싶을 때 숨을 수 있는 숨통 트이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내 생애 최초의 독립 공간이 서른 살의 미시간의 개인 욕실도 없는 기숙사 작은 방이었지만,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저 공간만큼 크게 다가와서 자유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곳은 없을 듯싶다.


#공간이 주는 행복

#기억 #공간 #happy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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