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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yell Jan 19. 2023

달콤함을 기억하는 법 | 곶감 크림치즈 깜빠뉴

소한 - 빌어서 꿔온 추위

호랑이도 무서워 한 달콤한 맛.


이야기로 남을 정도의 달콤함이라니, 곶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이지 싶다. 그 맛있는 곶감을 오해 호랑이가 우습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전래동화 속의 아이가 신기해진다. 곶감이 얼마나 무서웠기에, 아니 얼마나 맛있었기에 호랑이도 못 그치게 한 울음을 달랜 것일까?


명절이면 엄마와 이모들은 이불 속에 모여 앉아 매년 같은 이야길 한다. 눈 속에 고구마를 묻으면 한결 달아져서 그걸 간식으로 먹었다던가, 조청을 주방 선반 위에 꽁꽁 숨겨두면 그걸 찾아내 퍼먹었다던가 하는 이야기. 지리산 자락에 살던 어린 날의 기억이다. 그만큼 그 시절 단맛은 귀한 존재였다. 달콤함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나면, 곶감에 울음을 그친 아이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엄마가 살던 산동네 끝집에는 감나무도 있었다. 앵두나무의 앵두는 익기도 전에 형제들의 입 속으로 사라졌지만, 감나무는 오르기 힘들었을 테니 어쩌면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단감은 껍질을 깎아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줄줄이 꿰어둔다. 단단했던 감이 말랑해지는, 억겁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이 흐르고 나면, 촉촉한 속과 진한 달콤함만 남는다. 꿈에 그리던 단맛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단맛이 넘쳐나는 지금에 사는 우리는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곶감이면 우리의 울음을 달래는데 충분한가? 글쎄, 잘 모르겠다면 재료를 이것저것 더해보자. 그렇게 더해진 크림치즈와 호두 덕에 맛도 식감도 풍성해진다.


그래, 이 정도라면 세상의 풍파에 눈물 흘리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깜빠뉴는 시골이라는 뜻을 가진 식사용 빵이다. 하지만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깜빠뉴 마저 디저트용 빵으로 만들어낸다. 아낌없이 가득 넣었다는 에서 시골을 떠오르게 함은 분명하다. 곶감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의 입맛에 맞춰, 속이 가득 들어찬 곶감 크림치즈 깜빠뉴를 만들었다.



곶감은 반건시를 준비했다. 사실 작게 잘라진 말랭이로도 충분하다. 어느 쪽이든 짙은 주황 아래 진한 달콤함이 가득하다. 특히 반건시는 손끝으로 느껴지는 말랑함이 촉촉한 그 속을 예상케 한다. 그냥 하나 집어먹고 싶은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곶감이 너무 차갑지 않게 녹여준다.

곶감이 녹는 동안 빵반죽을 준비하자. 빵은 그냥 밀가루만 사용해도 되지만, 호밀가루나 통밀가루를 더해주면 향이 좋아진다. 깜빠뉴라는 이름에 걸맞은 구수한 향이 더해진다. 상상 속의 고즈넉한 풍경의 시골마을이라면 무릇 이런 향이 가득하지 않을까. 호밀과 닮은 색으로 반죽이 물들어 맛있어 보이는 것은 덤이다.

모든 재료를 한데 넣어 매끈하게 뭉쳐진 반죽에 한번 볶은 호두를 넣고 가볍게 반죽한다. 노릇하게 볶은 호두는 고소한 지방의 향이 강해진다.  색이 반죽에 묻어나면서 반죽의 색도 진해진다. 색깔과 향기로 호두의 존재를 느끼며 반죽을 마무리한다. 호두가 보이지 않게 속으로 숨겨주고, 따한 곳에서 발효를 시키자.

반죽은 호두와 호밀의 향을 품을 채 몸집을 부풀린다. 보드랍게 부반죽을 눌러 펼치면, 호두가 곳곳에서 탈출하려 한다. 다시 반죽 속으로 자리를 찾아주고 나면 곶감과 크림치즈를 올려줄 차례이다.


가능한 큼직하게, 그리고 가득하게 올려주면 마음 한켠이 뿌듯해진다. 게다가 반죽과 이루는 재료들의 색감이 참 조화롭다. 아직 구워지지도 않았지만, 눈으로 느껴지는 재료의 맛이 기대감을 빵반죽처럼 부풀린다.

터져버릴 듯 가득 채운 토핑 탓에 반죽을 말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조심조심 끝을 잘 말아서 모양을 잡아준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따뜻한 곳에서 발효되고 나면, 이제는 구울 일만 남았다.


그전에 호밀가루를 빵 반죽 위에 잔뜩 뿌리고는 칼집을 넣는다. 빵이 예쁘게 터질 수 있도록 길을 미리 내는 것이다. 구워진 빵은 칼집을 따라 작은 오솔길을 만든다. 빵에 내는 칼집은 제빵사의 사인으로 불리는 만큼, 원하는 모양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빠르게 칼집을 넣고 나면 정말로 빵을 구울 차례이다.

빵을 넣기 직전, 뜨겁게 달궈진 오븐 안으로 물을 뿌리면 작은 오븐은 금세 수증기로 가득 찬다. 수증기 덕분에 깜빠뉴의 겉은 더 바삭해지고 속은 더 촉촉해진다.


갓 구워져 나온 깜빠뉴는 한 층 더 구수해진 향을 흩뿌린다. 껍질 위로 가득하게 뿌려진 호밀가루가 구워지면서 내는 매력적인 향이다. 곶감과 크림치즈는 혹여 누군가 훔쳐갈세라 단단한 빵 껍질, 그 아래에 꽁꽁 숨겨두었다.

갓 구워낸 빵은 투박해 보이지만 아직 연약하다. 한 김 식힌 뒤 슬라이스하면 그 단면에 가득 박힌 토핑을 만날 수 있다. 크림치즈 호두말이가 빵으로 탄생한 듯 호두와 크림치즈 그리고 곶감을 가운데 두고 빵이 그 주변을 둘러싼다. 구수하고 바삭한 빵껍질 안으로 아낌없이 넣은 토핑들이 자리 잡고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단맛이 올라오는 호밀빵과 그 속에 달콤 진득한 재미를 주는 토핑, 호두로 더한 씹는 맛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화를 이루는 달콤한 맛의 깜빠뉴이다.


곶감만으로는 미처 달래지 못한 우리의 울음을 그치게 해 줄 달콤한 맛, 곶감 크림치즈 깜빠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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