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말을 제가 믿을거라고 생각하세요?”
날카로운 화진의 목소리는 애써 화를 참고 있는듯 보였다.
“믿고 안믿고는 화진씨 자유죠. 제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거짓말로 무슨 이득이 저에게 있을까요?”
“누군가를 놀리며 유흥을 즐기는 사람이 그럴지 누가 알겠요.”
“그게 저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뭐 생각하시는건 자유니까요. 그래도 제딴은 좋은 뜻에서 이 자리를 마련한건데 좀 억울하네요.”
화진은 하늘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늘씨도 제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거죠? 제가 기분이 나빠져서 인터넷에 하늘씨 가게에 대해 못된말을 쓰고 그럴수도 있지 않겠어요.”
“뭐 그럴수도 있겠네요. 그건 생각 안해봤지만 안그러실꺼잖아요. 근데 별로 제 이야기 듣고싶지 않으시면 가셔도 괜찮아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요”
짜증이난 화진과 다르게 하늘은 이런 태도에 익숙한듯 여유로워 보였다. 칼날을 쥐고 있는건 하늘이었기에 아쉬울것이 없어 보였다. 바늘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여기까지 찾아온건 화진이었다. 여기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영영 바늘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할지도 모른다. 화진은 여기까지 온 김에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깊게 심호흡을하고 다시 하늘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제가 좀 감정적이었어요. 죄송해요. 근데 다짜고짜 슬픈사람이니 그런 소리를 하시니까 순간적으로 좀 짜증이났네요. 뭐 관상 공부하시고 그런거에요?”
관상이라는 말에 하늘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손사래를쳤다.
“관상에 ㄱ도 몰라요. 관심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는게 없네요. 이제 이야기를 들은 준비가 되었나요?”
화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바늘을 밟으면 바늘이 혈관을 타고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자리를 잡는다는 이야기 들어본적 있나요?”
“뭐 초등학생때 반에서 애들이 그런 이야기를 괴담처럼 하기도 했던것 같네요.”
“맞아요. 수박씨를 먹으면 배에서 수박이 자라난다는 괴담이랑 비슷한 맥락이죠. 하지만 다른점이 있다면 바늘 이야기는 진짜고 수박씨는 거짓이라는 것 정도겠죠.”
화진은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무슨 말 하는거야 저여자.
“몸속에 있는 바늘은 사실 진짜 바늘이 아니에요. 그건 바늘이라기 보다는 슬픔의 결정체에 가깝죠. 삶이 너무 괴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워서 혼자 감정을 삭히면 어느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속에 바늘이 생겨버리죠.”
슬픔의 결정이 바늘이라니. 이게 가능한 일 인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화진은 어지러웠다. 지금 눈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 여자가 정말로 실존하는 인물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들었다. 그냥 이 모든건 꿈이자 허구이며 내가 무엇인가에 홀려서 착각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화진의 귓가에 문이 열리며 나는 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영업 하시나요?”
모자를 푹 눌러쓴 손님이 문 사이로 몸을 빼꼼 내밀었다.
“죄송해요. 영업이 끝나서 정리중입니다.”
하늘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에게 죄송하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영업종료 간판을 걸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화진을 향해 하늘은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제 이야기를 믿으신다면 다음주 같은 시간에 한 번 더 여기로 와주세요.”
“차 잘마셨어요.”
화진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점을 나왔다. 거리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