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시간

by 예나네

Jtbc의 <사랑하는 은동아>는 가슴 아프면서 따스한 휴먼 드라마입니다. 젊은 남자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손에 신경이 굳어서 재활치료를 받는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의자에 앉아 뒤꿈치를 땅에서 떼지 못하도록 고정해 둔 채 기계를 작동하면 굽고 굳은 다리를 들어 올려서 펴는데, 뼈가 부스러질 듯 아픈 가 봅니다. 아, 악, 하며 비명을 지르면서도 재활의지를 굽히지 않던 모습에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육신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통 중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파산, 이혼, 질병, 가족의 죽음…,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겪습니다. 충격으로 다친 정신을 사고로 다친 육신처럼 펼 것은 펴고 붙일 것은 붙여 넣는 재활을 감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학 중에 대학 3학년이던 우리 민구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자다가 침묵보다 더 고요히 하늘나라로 떠난 후, 이 어미의 가슴도 마비되고 부러진 뼈마디처럼 어그러진 것 같았습니다. 그 젊은이가 하던 것처럼 재활치료를 해야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 이를 꽉 물고 치료를 받았듯이, 어미를 지켜보고 있을 우리 민구와 걱정하는 딸들… 을 위해서라도 마음의 뼈마디를 맞추고 굳어버린 ‘심줄心線’을 최대한 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같은 현실일지라도 산 사람은 살아내야 합니다. 씨알이 심어지면 어둠을 뚫고 싹이 되고 나무가 자라서 꽃 피고 열매 맺어, 깊은 숲이 되는 건 삶과 죽음 사이에 낀 모든 생명체의 숙명입니다. 절망이 깊은 만큼 희망의 기대치는 넓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닉 브이치치』의 일어섬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준 건 사실이거든요.

생명을 부지하기도 힘든 속수무책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힘뿐 아니라 초월적인 외부의 위력이 동시에 작용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바닥의 시간일지라도, 희망만 버리지 않으면 빛이 도와줍니다. 바닥을 치는 치명적인 절대 비참함의 옷을 확 벗어 버리는 연습을, 하루에도 수백 번 되풀이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서게 됩니다. 가장 깜깜한 밤을 지나야 여명이 트듯이, 명치끝이 뻐근한 뼈아픈 시간 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이 나옵니다.



바닥의 시간을 “하루하루” 견디십시오. 일주일, 한 달, 일 년이라는, 너무 오래된 미래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닷물이 “물 한 방울”로 시작된 것처럼 한 순간 한 순간을 버티다 보면 시간이 일어섭니다.


바닥의 시간이 가슴의 눈물같이 흐르다가 마른 눈물이 됩니다. 밤새도록 잠이 안 올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쯤은 수면제 반 알을 먹고, 가슴이 뻐근하여 빠개질 것 같을 때는 청심환 반 알을 드세요. 나는 8개월을 그러고 나니 이제 약이 필요 없는 시간에 왔습니다. 수면제나 청심환을 먹는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약은 아플 때 치료제로 복용하라고 제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먹지는 마십시오.

아무리 바닥의 시간에 있더라도 섣불리 주저앉지 마십시오. 나무의 몸통이 비에 젖고 차디찬 강풍에 흔들리긴 하지만, 뿌리를 깊이 박고 있다 보면 햇살과 산들바람이 어루만져 줍니다.

우리 민구가 떠난 자리에 나는 성경의 욥을 초대했습니다. “욥기”를 읽다가 지치면 유튜브에 들어가 욥기서 강해를 들었습니다. 상실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 앞에서 울다』, 채정우의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고 고난 극복에 관한 목사님의 설교를 귀에 꽂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슬픔의 잔이 차고 넘칠 때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습니다.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의지하는 편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낮에는 청소부가 되어서 하루하루 청소를 했는데 어언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우리 민구한테 너무 미안한 마음을 씻어내는 정신으로 합니다. 이곳 시드니에서 백인들의 살림살이 면모를 살펴보는 색다른 체험도 되었지요. 몸을 쓰는 노동은 잠을 잘 오게 하였고 시름을 잊게도 했지요. 그 와중에도 슬픈 바닥의 시간이 엄습할 때는 무릎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직은 가슴 한쪽에 통증이 남아있지만 신의 어루만짐이 통합적인 평안과 사랑으로 채워줍니다. 내 아들이 간 곳은 빛 가운데라고, 그곳은 아픔도 힘듦도 없는 곳이라고, 미국보다 더 높은 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요즘에는 내 아들에게 못다 해준 사랑을 세상에다 갚을 궁리를 해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의 그 장애우가 이를 꽉 물고 일어섰듯이, 이 어미도 일어설 이유를 찾습니다. 먼 인생길에서 누구나 바닥의 시간을 겪는데, 재활의지가 있으면 분연히 일어설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바닥은 아침마다 내 발바닥에 대고 이렇게 외칩니다.

“힘내! 우리는 영원히 바닥이지만 그것을 낙으로 살잖아. 우리, 바닥의 시간을 굳세게 딛고 담담하고 당당하고 단단하게 일어나 독수리 날개를 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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