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계에 에디 브라보만큼이나 괴짜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뮤지션이었던 그는 20대에 주짓수에 빠지게 되었고, 예술가적 기질 때문인지 일찌감치 남다른 독창성을 보였다. 비주류 기술이었던 트위스터, 러버가드, 일렉트릭체어 등을 자신만의 색깔로 재해석해 체계화하였으며, 그러한 기술들로 주류의 강자였던 호일러 그레이시에게 승리까지 따냈다. 비주류 중의 비주류가 주류 중의 주류에게 한 방 먹인 셈이었다. 당시 주짓수계는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주짓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흉내 냈던 선수가 바로 에디 브라보다. 당시 그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에 끌려 그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놀라웠던 점은 그의 삶 또한 주짓수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음악이든 주짓수든 영감의 원천은 대마초라 이야기할 정도로 대마초 애호가였으며, 심지어 그의 아내는 포르노 스타였다. 심지어 그는 음모론에 심취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어떤 부분도 주류의 세계 하곤 어울리지 않았다. 그를 좋아하던 나조차 그의 괴짜스러운 삶까지 이해하긴 어려웠다. 내가 관심을 보인 괴짜는 에디 브라보가 최초였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괴짜들의 삶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마 매너리즘이라는 말을 알게 된 이후부터 인 것 같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런 같은 하루의 반복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의 상황은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의 뜻에 정확히 부합했다. 그런 내 눈에 괴짜는 나하고는 다른 하루를 보내는 매혹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괴짜가 없었기에 책으로나마 그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봐, 네가 알고 있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야.” 그들 한 명 한 명은 주류의 물살에 흔들리지 않는 커다란 바위와도 같았다. 주류의 흐름을 바꿔 놓기에 충분한 크기의 바위. 주류의 사람들에게 비난받던 그들의 호칭은 늘 괴짜였지만 그들로 인해 세상이 바뀌면 칭호는 혁명가로 뒤바뀌었다. 그들로 인해 일정했던 나의 삶의 궤도는 조금씩 틀어지게 되었다. 매너리즘은 그렇게 괴짜들에 의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에디 브라보는 자신의 팀을 만들었다. 팀의 명칭은 '10th Planet'이다. 말 그대로 10번째 행성이라는 뜻이다. 알다시피 태양계에는 9개의 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이 존재한다. 모두 태양을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를 이루며 공전하고 있다. 에디 브라보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행성(주짓수)이 존재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행성은 9개의 행성과는 다르게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제멋대로인 에디 브라보스러운 팀 이름이다.
나는 괴짜가 좋아졌다. 주류를 한 방 먹이는 비주류가 좋다. 주류와 비주류의 싸움, 그 싸움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의 역사가 그러한 싸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에 괴짜들은 주류의 세계에서 환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쾌감을 선물했다. 반대로 주류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주류의 세계를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괴짜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을 막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괴짜들은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갔다. 현대 사회에서도 괴짜들은 곳곳에 존재할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열 번째 행성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나는 괴짜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아마도 현재의 나 또한 괴짜스러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은 나에게 괴짜와 몽상가라는 별명을 새로 지어주었다. 한창 일을 해야 할 나이인 30대에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일 수도, 결혼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결혼을 생각하던 여자친구와 이별했기 때문일 수도, 퇴직금을 까먹으면서 주짓수를 하고 철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기 때문일 수도, 생전 글이라곤 써본 적도 없는 놈이 뒤늦게 글을 써보겠다고 해서 일 수도 있다.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을 부정할 수 없는 요즘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던 궤도를 일탈하게 된 나. 그런 나는 삶의 10번째 행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알게 된 거라곤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자유도 그만큼의 불안도 모두. 여기 한 명의 괴짜가 세상 모든 괴짜들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