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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Feb 05. 2020

[주짓수 에세이] 난교(蘭交)

향기 가득한 관계에 관하여

익숙해져 버린 사람과 하는 것이 지겨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서 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 모임에 관한 글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나와 있었고 참석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너도 그것을 욕망하는가?" 나는 그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곳에 가보니 한 사람뿐이었다. 실망하던 찰나에 하나둘씩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전에 몇 번 참석을 했었는지 서로 아는 사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이가 대다수인 듯했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훑어보며 호기심을 키웠다. "이 사람은 어떨까?", "저 사람은 어떨까?"


시작시간이 되자 자연스럽게 끌리는 사람들끼리 마주했다. 내게 끌렸는지 어떤 한 사람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당연한 듯 모두가 엉겨 붙기 시작했다. 어떠한 말도 필요 없었기에 들리는 소리라곤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평소보다 힘이 든다는 걸 느꼈다. 익숙하지 않은 근육이 사용되어 그런 것 같았다. 금방 전신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7분이라는 시간이 이상적인 시간이라 판단되었는지 정확히 7분이 지나자 모두가 파트너를 바꾸기 시작했다. 물론 내 파트너도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이번 역시나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엉겨 붙어 땀을 흘릴 뿐이었다. 네 번쯤 반복되었을 때였던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 고비를 견뎌내니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모임은 끝이 났다. 온몸이 젖은 탓에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가까워진 느낌. 어떤 대화도 없이 몸만을 섞은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참석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전신에 근육통이 느껴졌다. 그 기분 나쁘지 않은 통증을 짊어지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창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는 말이라는 게 그다지 필요 없을 수도 있겠구나.”싶었다. 관련된 기억이 있다. 사람의 향기만으로도 기분 좋았던 기억이. 그 사람 또한 나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같이 있으면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저 좋았으니까.


“향기에 무뎌지기 시작할 때 말이 끼어드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나 사랑해?”라는 질문을 하던 모습이, 또 그 질문에 구구절절 대답하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말을 해도 서로가 불만족스럽기만 했던 그 기억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는 서로가 향기에 무뎌졌을 때였다. 향기에 무뎌졌기에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말들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말도 향기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말이 행동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이다. 향기에 무뎌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말이 많아진다는 것은. 이번 오픈매트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난교(蘭交): 난의 향기와 같이 아름다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끼리의 친밀한 사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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