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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혁 Feb 05. 2020

[주짓수 에세이] 주짓수다

사랑이 확장되는 길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주짓수에는 나름의 순서가 있다.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스트레칭, 드릴과 같은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어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당일 관장님에게 배운 기술을 파트너와 함께 연습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스파링을 하는 것이다. 체육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서는 5분씩 세 번 스파링을 한다. 그렇게 스파링이 끝나면 함께 인사를 나누며 운동을 마무리를 짓는다. 주짓수의 한 클래스는 보통 이러한 과정을 거쳐 끝이 나게 된다. 하지만 보너스 스테이지는 게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짓수에도 보너스 스테이지가 존재한다. 바로 ‘주짓수다’라는 스테이지다.


‘주짓수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주짓수’와 ‘수다’를 합쳐놓은 합성어이다. 스파링에 지친 이들이 체육관 매트에 풀썩 주저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은 체육관에 갈 때마다 보게 되는 흔하디 흔한 광경이다. 주짓수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이곳저곳에서 무리를 이루어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말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장난 섞인 스파링과 같이 몸으로 수다를 떨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는 별 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궁금할 때가 많았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밌는지 얼굴에는 항상 웃음꽃이 피어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다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말 수가 적은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그것이 이어져 현재까지도 그다지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체육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체육관은 운동을 하는 공간인 만큼 매일같이 열심히 땀을 흘렸을 뿐이었고, 운동이 끝나면 곧장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 체육관을 3년 이상 다니다 보니 이런 나에게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리를 이루어 수다를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 모습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왜일까? 이유가 궁금했다. 깊은 대화를 나눠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밖에서 따로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 왜 그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운 걸까? 고민을 해봐도 머리만 아플 뿐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알듯 말 듯 아리송했지만 딱 거기 까지였다. 그렇게 고민은 “그냥 좋으면 좋은 거지 뭐~”라 여겨지게 되면서 의식 저편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고민이 해결된 시점은 한 참이 지난 후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특정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 후 우연찮은 계기로 그 단어가 떠오르게 되어 후련함을 느끼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글을 쓸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대상을 의인화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말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우연히 주짓수를 의인화해보자 주짓수다에 관한 고민이 떠오르게 것이다. 그것도 왜 수다가 그리도 즐거울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까지 알게 되었다. 오래된 체기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주짓수를 의인화해보자 짓수는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 그렇다면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나와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아마 나는 그 사람 또한 좋아하게 될 것이다. 애인을 소중히 여기는 애인의 절친한 친구처럼 말이다. 주짓수다가 즐거웠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나와 같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나는 짓수를 시작으로 그들까지 좋아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과의 수다는 즐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으니 말이다.


이러한 인간관계가 확장됐으면 싶었다. 그러면 모두가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이 될 테니깐. 뉴스를 보다가 한 번쯤은 상상해봄직한 그런 이상적인 세상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대상이 있어야만 했다. 주짓수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무언가가. 그래야만 모두가 모두를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생각이 헛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런 대상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 대상으로서 모두를 통합적으로 아우르는 건 중세시대 종교로서도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역사는 그것이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절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지름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시 되어야 할 건 모두가 좋아하는 공통적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건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소중한 단 한 사람에서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그 더딘 발걸음만이 사랑이 확장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웃음꽃은 오직 그 길가에서만 피어나는 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 길로 들어서는 문이 반드시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게 주짓수가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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