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 야구경기를 관람한 적이 있습니다. 야구에 관심은 1도 없었지만 대학교 후배들의 권유로 살면서 처음으로 야구장에 가게 되었죠. 당시 야구는 전무후무할 정도로 붐이었습니다. 어느 집단에 가도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으며, 각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죠. 그만큼 야구경기 표를 예매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서울에서의 경기는 말이죠. 후배들은 어렵게 구한 티켓이라며 함께 가자고 저를 꼬드겼습니다. 치어리더 단상 근처의 좌석이라 덧붙이면서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없을 거라 하였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번쯤은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전부터 사람들이 왜 그리도 야구에 열광하는지 궁금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치어리더 때문은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목소리였습니다. 특히 선수마다 응원가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입을 맞춰 응원한다는 점이 신기했죠. 물론 저는 그 분위기에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수 이름조차 모르는 제가 응원가를 부를 수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죠. 그래도 야구경기는 9회까지 있기에 회가 반복될수록 조금씩 입모양을 흉내 낼 수는 있었습니다. 어릴 적 선생님 앞에서 구구단을 외울 때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편도 저편도 아니었던 저는 주변 사람들처럼 흥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야구장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후배들은 양 팀 득점 없이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기에 재미가 없었을 거라 이야기했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장에서 빠져나오는 길,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나랑은 안 맞는구나. 다시는 올 일이 없겠다."
몇 년이 지난 후 잊고 있었던 야구장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제가 처한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저의 상황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회사를 가득 메운 목소리에 적응해보려 나름의 노력을 하던 중이었죠. 그렇게 2년, 3년이 지난 후부터는 저도 주변 사람들의 입모양을 어느 정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저는 사회생활에 적응을 마친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의 내면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후배들에게 끌려갔던 야구장에서처럼 아무런 흥이 나질 않았던 것이죠. 이편도 저편도 아닌 저는 야구장에 어울리지 않았듯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점차 제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만을 흉내 내는 앵무새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녹음된 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을 땐 희열감이 느껴졌습니다. 서로 힙합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친해지게 된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선뜻 마이크를 구입하면서 저의 목소리를 녹음할 수 있게 된 것이었죠. 처음엔 "내 목소리가 이렇다고?"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를 휴대폰에 넣어 반복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저의 랩을 들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고요. 처음이었던지라 작사, 작곡을 한 것도 아니었고 당시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던 곡 비트에 랩을 한 것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는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이 뇌리에 깊게 박혔는지 그 뒤론 난생처음 가사도 써보며 속칭 방구석 래퍼 놀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야구장에 대한 기억 그리고 나의 목소리에 대한 기억이 오버랩이 되면서 깨닫게 된 바가 있었습니다. 목소리의 중요성입니다. 나만의 목소리는 야구장, 사회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여태껏 어디에서도 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 꿈 하나를 품게 되었습니다. 한 장의 앨범. 죽기 전에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담은 앨범 한 장을 내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장르는 제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힙합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작사는 해볼 만했지만 작곡이 너무나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막상 작곡을 배워보니 음악에 ‘음’자도 모르는 저에게 화성학이니 코드니 하는 용어들이 생소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편집 프로그램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죠. "적응하면 괜찮아지려나?"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힙합에 대한 흥미가 점차 떨어지다 결국엔 배우는 걸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어렵다는 핑계로, 재미없다는 핑계로, 남들보다 늦었다는 핑계로 꿈으로부터 도망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뭐 어쩌겠습니까. 그때의 전 그런 사람이었는걸.
다행히 가사를 쓰던 행위는 글쓰기로 이어졌습니다. 글 역시나 방법만 달랐지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 즉 나만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평소 철학자들을 다른 어떤 이들보다 멋있다고 생각해왔던 것도 제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저는 사유의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책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꿈은 한 장의 앨범에서 한 권의 책을 내보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죽기 전에. 하나를 더하자면 가능하면 빨리.
본격적으로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나다운 것은 내 삶 어디에 묻어 있을까?”하고 말이죠. 그것을 글로 쓰고 싶었습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저의 꾸밈없는 일상이었습니다. 금방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식사와 수면처럼 저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었죠. 바로 주짓수입니다. 그리고 사소해 보이는 것도 깊게 사유해보는 저의 습관이었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매일같이 하게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 이외에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나만의 영역이라 여겨졌습니다. 꾸준함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가 5년 이상을 하게 된 주짓수, 그러면서 많은 사유를 하게끔 만들어준 주짓수, 저는 이것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 품었던 힙합 앨범에 대한 꿈 때문일까요? 의도치 않았지만 글의 형식은 힙합과 같이 자유로운 에세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편의 글은 하나의 곡처럼 3~4분이면 읽히는 비교적 짧은 분량이 되었습니다. 쓰다 보니 글은 20편이 넘어갔습니다. 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힙합으로 따지면 믹스테잎 앨범을 만든 셈이지요. 이것이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눈엔 서툴기만 해 보이는 글이기에 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꿈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겁니다. 처음으로 한 걸음 내디뎌보게 된 것이죠. 그것만으로도 저에겐 충분히 기쁜 일입니다.
주짓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고 주짓수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우연한 기회로 저와 인연이 닿기를 바라봅니다. 또한 자신만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의 글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봅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저는 주짓수를 하며 깨닫게 된 바를 글로 써 내려가 보려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래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