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길들이기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에 이어서 <먼저 온 미래>의 4장 <평평함과 공평함>을 읽고 쓰는 글입니다. 이번에도 우선 밑줄 친 내용을 모아서 인공지능에게 전달한 후에 주제를 받아보고 전체 구성을 결정하기로 합니다.
알파고의 등장이 모두에게 꼭 비극은 아니었습니다.
뒤늦은 전성기의 배경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는 인공지능으로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호승 3단은 인공지능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게 그렇게 돌풍을 일으키기 직전인 2018년 말부터라고 말했다.
이호승 3단은 스스로 수혜자로 여기는 듯한데, 인공지능이 주는 가장 큰 이득을 심리적 안정감이라고 합니다. 다음 인터뷰 내용은 저자가 단락의 소제목으로 뽑은 문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3단은 언론 인터뷰에서 "초일류들을 만나도 너희가 AI보다 더 세겠느냐는 생각으로 싸운다.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너희'는 아마도 기존의 초강자들을 뜻하는 것이었을 테고, 인공지능으로 공부하면 누구나 평등해지는 상태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민주화'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1]
흥미롭게도 이런 '평평해짐'을 몇몇 바둑계 인사는 '민주화'라고 표현했다. 신민준 9단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중, 일, 대만 등 동북아 4개국의 인기 스포츠에서 10년 후에는 세계 바둑 민주화로 중동이나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고수가 나올 가능성이 많아졌다. 강자하고 붙어야 실력이 느는데, 굳이 아시아로 바둑 유학을 오지 않아도 이제 아무 데서나 AI 사범을 모시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시 한번 '바둑계의 민주화'에 대해 부연합니다.
특정 지역 출신, 혹은 전문가가 독점하던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정보 활용의 민주화' 혹은 '지식의 민주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다른 업계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그런 일이 벌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지인이 코인 트레이딩 프로그램을 인공지능 도움을 받아 스스로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IT 관리자 출신이지만 개발자는 아니었던 그는 인공지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프로그램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인공지능의 힘을 극찬합니다.
하지만, 독재나 왕정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식의 변화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음 내용을 볼까요?
바둑에서 승부에 임하는 자세, 혹은 고수의 경지를 표현하는 말로 '반전무인(盤前無人)'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바둑판 앞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오직 바둑돌이 놓인 형세만 보고 바둑을 두라는 조언이기도 하고, 그렇게 바둑을 두는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바둑판 앞에 있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바둑돌이 놓인 형세만 보고 바둑을 두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바둑을 둬 본 일이 없는 입장이지만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굴려 봅니다. 그중에서 남길 만한 생각은 능력을 증강시킨다는 관점입니다. 책 내용과 무관하게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널리 포진 '증강 코딩' 탓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역량 배양에 어려움을 느꼈던 주제들을 소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면(直面)이라고 불렀던 '고통스러운 현실을 그대로 보는 일'과 편향(偏向)과 직관(直觀)을 극복하고 사실을 보려고 노력할 때 쓰던 'data-driven'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바둑에 배경을 둔 이야기이긴 해도 인공지능으로 바둑을 배우면 롤 모델에 대한 신화나 편향에 기대는 대신에 승부를 위해 사실을 직시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다시 책으로 돌아가 봅니다. 천재 기사와 그렇지 못한 기사를 나누는 가장 큰 척도는 초반 포석이었다고 합니다.
천재형 기사와 노력형 기사의 실력 차이가 가장 벌어지는 곳이 초반 포석이었다. 노력형 기사들이 가장 좌절하는 대목도 초반 포석이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초반 포석의 규칙을 뒤엎었다. 그리고 개인 가정교사가 되어주었다. 인간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내심이 좋은 선생님이었다.
초반 포석을 알려주고 끈질긴 개인 교사 역할을 하는 것이 인공지능이 바둑 기사에게 주는 가장 큰 강점인 듯합니다.
2025년 현재 한국 여성 기사 중 최강자인 최정 9단도 인공지능의 수혜자로 꼽힌다. <중략> "저는 초반에 돌이 없는 경우에 어디에 둬야 할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감각도 별로 안 좋거든요. 그런데 인공지능으로 공부를 하면 초반 공부가 되게 쉬워요. 외우면 되기도 하고, 모르겠는 건 다 확인을 해보면 되니까요. 그래서 제가 되게 약점이었던 부분이 많이 보완됐어요. 그래서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바둑 AI 프로그램은 노력형 기사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천재형 기사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
그것이 노력형 기사들에게 이점을 제공하고, 천재형 기사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하게 만든 것이죠.
이 9단은 인공지능 덕분에 바둑이 훨씬 재미있어졌다고, 너무 편해졌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기사가 많지 않을 것 같지만·"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희성 9단과 최명훈 9단은 인공지능이 다음 스텝을 알려주기 때문에 막막함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부라는 게, 내가 열심히 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다는 목표가 보이면 쉬워요.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 어려운 거죠.
예전에 지인이 기획자에 비해 개발자의 빠른 피드백 루프가 주는 강력함에 대해 했던 말과 그가 쓴 글을 읽었던 기억이 소환됩니다. 한편, 다음 내용은 처음 읽을 때와 지금 글을 쓰며 다시 읽는 느낌이 다릅니다.
고레이팅이라는 웹사이트에서 발표하는 세계 랭킹과 프로기사들의 기력이 상당히 믿을 만한 데이터로 통용된다. 고레이팅은 '엘로(Elo) 레이팅 시스템'이라는 기법을 응용해 기사들의 기력을 수치화하는데, 2024년 6월 5일 기준 신진서 9단은 3870점으로 세계 1위, 박정환 9단은 3697점으로 세계 2위, 커제 9단은 3682점으로 3위라는 식이다.
순위를 부여하는 일에 호감이 없어 처음 읽을 때는 감흥이 없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용하기 직전에 '빠른 피드백 루프'를 쓴 탓인지, 랭킹 자체가 지속적으로 학습자에게 피드백을 주는 도구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경쟁만이 아니라 학습할 욕망이 있다면, 랭킹 변화 자체가 무언가 배울 의지를 자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바둑의 AI 시대에 생존법은 전과는 분명 다른 양상을 띠는 듯합니다.
"AI 시대에는 이전보다 절대적인 공부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희성 9단
"앞으로는 공부량이 부족한데 성적이 뛰어난 기사는 안 나올 거 같아요." - 조한승 9단
"이제는 정말 공부 방법 중에서 많이 외우는 게 상당히 중요해요." - 최명훈 9단
2025년 한국에 살았던 국민이라면 계엄령과 내란 극복을 하면서 뉴미디어의 힘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뉴스를 독점하던 종이 신문과 지상파 방송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반면에 기득권에 서 있던 레거시 미디어들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허탈감을 느끼겠죠. 최근 기사로 김어준과 민주당을 저격했던 주간경향의 기획 의도에서 무너져가는 기득권의 의식 구조가 느껴집니다.
중요한 메시지는 다음 단락에 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어떤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이 다 함께, 한 목소리로 인공지능을 거부하는 일은 아마도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 업계에 일단 인공지능이 도입되어 영향을 미친 뒤에는 말이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기득권은 도태가 되겠지만, 생존을 위해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직접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갈등 구도는 더 이상 '인공지능 대 인간'이 아니다. 3장에서 말한 대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전문가 대 다른 인공지능을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는 다른 많은 전문가 대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는 구세대 전문가'의 구도가 펼쳐진다.
결국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과 이를 거부하는 인간 사이의 갈등인 것이죠.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일반 행태를 설명하는 느낌을 주는 글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약(弱)인공지능 역시 일단 나오면 그게 없었던 시절로 세상을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약인공지능으로 인해 경쟁에서 유리해지는 그룹이 그걸 포기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트럼프가 떠올랐죠. 저자는 비슷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북한을 예로 듭니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떠올려 보자.
저자는 평범한 질문과 유용한 질문의 차이를 보여주려는 듯합니다.
챗GPT가 등장한 뒤로 '수준급의 실력을 지닌 소설 쓰는 인공 지능이 나오면 당신도 이용할 거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나는 그 질문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질문은 맥락에 맞는지 검토하지 않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마치 2025년에 도시에 사는 직장인에게 '다음 휴대전화는 스마트폰으로 살 거냐, 피처폰으로 살 거냐'라고 묻는 것 과 같다.
그리고, 다음 문장에는 제 주변 개발자 지인들이 이 책을 극찬하는 이유가 포함된 듯합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결합해 '스마트폰-환경'이라 불러야 할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은 이제 비행기나 기차를 탈 때 길고 복잡한 수속을 거쳐야 한다.
'스마트폰-환경'이라는 너무나도 소프트웨어적인 표현은 기술이 만들어 가는 변화를 담는데 너무나도 효과적인 신조어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은 차별받는다.
스마트폰 사용 여부가 환경 변화의 일부가 된 것이죠. 지구 온난화만 환경 변화가 아니란 것이죠!
한편, 40년간 서울에 살았지만 제비에 대한 기억이 없고, 이제는 제주에 살면서 매 년 제비를 보는 탓에 다음 문장이 더욱 흥미롭게 여겨졌습니다.
서울에서 40년간 제비들이 쫓겨나고 비둘기가 번성한 이유는 제비들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비둘기들이 현명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서,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거대한 환경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일으킨 인간도 딱히 제비를 혐오하거나 비둘기를 선호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이 그저 우연히도 제비에게는 불리했고 비둘기에게는 유리했다. 'Al-환경'도 그러할 것이다.
다음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지난 글에서 인용한 '창작자(Creator)가 아니라 프로듀서(Producer) 역할'이라는 설명이 떠오릅니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 덕분에 내 생산성이 크게 오를 것 같다. 나는 외국어를 잘 못하는 대신 기획력은 어느 정도 있다고 믿으니까. 사실 나는 내가 보는 현상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현상들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나보다 훨씬 더 잘할 수도 있다.
짐작이나 사고 실험으로는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비둘기인지 제비인지 모른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AI-환경이라고 하는 거대한 세계는 이제 겨우 그 첫 충격파를 우리 세상에 보냈다
여기서 어제 읽은 글 <Forget AGI: It's Time to Consider MCI>에서 읽은 내용이 소환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되 생각의 운전석 자체를 인공지능에게 내주지 않는다면 제비가 아니라 비둘기의 운명에 가깝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인공지능은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아니, 이 말은 부정확하다. 인공지능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집어삼킬 것이다. 인공지능은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뒤에 나올 다른 여러 기기,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그 뒤에 나올 다른 여러 미디어와 결합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뭐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그 무언가는 사실상 우리가 살아야 하는 환경 그 자체일 것이다.
[1] 한편, 책의 다음 내용을 보면 '지식의 민주화'는 인터넷 보급부터 이어져 온 변화가 누적되어 만들어낸 것입니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기보를 구하는 것 자체는 쉬워졌다. 그럼에도 최신 포석에 대한 엘리트 기사들의 공동연구 내용이 퍼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고, 그런 면에서 중하위권 기사들은 불리했다. 각자 집에서 AI 포석을 혼자 연구하는 세상이 되자 그런 불리함이 사라졌다.
또한, 다음 내용도 수치화되고 투명해진 데이터로 민주화가 부각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알파고 제로의 고레이팅 점수는 5185점으로 까마득히 높다. 다른 바둑 AI 프로그램들의 고레이팅 점수도 5000점 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들이 오를 수 없는 구름 위에, 마치 신선이나 천사들처럼 인공지능이 있었다. 인공지능들은 그곳에서 반전 무인의 자세로 바둑을 뒀다. 그런 구름 위 세계가 생긴 것만으로도 인간들의 바둑은 상대적으로 평평해진 느낌이 들었다. 인간 기사들끼리 실력 격차가 나봤자 인공지능에 비하면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퍼졌다.
1.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은 먼저 온 미래였다
3. 프로 기사의 긍지와 자신감 상실 그리고 AI 동반자화
(17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7.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정보의 조합과 응용 과정
20. 인공지능은 언어적 일관성에 의존하는 새로운 지능이다
22.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 대국은 먼저 온 미래였다
23. 포토샵 대신 나노바나나로 갈아타는 첫 발을 떼다
25. 다음에 나오는 단어를 예측하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