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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Jun 08. 2024

명절병 (feat. 짝짝이 신발)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뭔가 잘보내야 될 거 같은 압박감이 드는 날.

생일, 기념일이나 명절 같은 의미 있는 날 특히 말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추석 당일'로 제주살이 중 맞는 명절.


평소의 명절과 다르게 양가 댁으로 방문하는 대신,

아침에 영상통화로 최소한의 예를 갖추기로 한다.


그런데 그마저도 늦잠을 자는 통에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의관을 갖춰본다.

 아직 몽롱해 짜증을 부리는 아이 등짝 스매싱을 하며 한복을 우겨 입히고, 나와 남편은 저화질 영상에 힘입어 세수하지 않은 얼굴로 잠옷만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은 다음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팅해 영상통화를 건다.


만만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 철없는 아이들은 장난기가 폭발하고, 명절 인사를 영상통화로 대신하는 것에 죄송함을 가지고 있던 우리로선 아이들의 무례함이 평소보다 더욱 못마땅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형식 아닌 형식적 인사를 끝내고 남편도 나도 왠지 모르게 아침부터 신문지를 씹고 있는 듯한 언짢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먹고 남편은 전날 아이들과의 서핑이 피곤했는지 다시 낮잠에 들어가고, 아이들은 집에만 있으니 심심한지 괜히 싸우기를 반복한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이 막바지에 이르러 시간 감각 없이 몰입해 읽다가 얼렁뚱땅 오전이 지나가 버렸다. 오후 3시에 인기 레스토랑을 예약해 둔 터라, 정오가 지나자 나와 아이들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아직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운다.


부스스 일어난 남편은 자기만 준비가 뒤처진 걸 발견하곤 후다닥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스테이크 집에 예약돼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의복 선택에 압박감을 주고 있다. (옷 선택이 마누라 마음에 안 들면 매우 비난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마누라가 옷을 골라주는 건 인형이 된 것 같이 굴욕적이기 때문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을 가장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그로선 코멘트 없이 한 번에 패스할 있는 안한 코디를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집에서 나서자 예약 시간까지 1-2시간 공백이 남아, 마침 레스토랑 인근에 유명한 관광지 있어 향한다. 꿀꿀했던 오전을 떨치기 위해 아껴둔 여행지 리스트 중 한 곳이자 SNS 속 인생샷 명소로 유명한 '비밀의 '을 히든카드로 써본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인기 관광지여선지 명절 당일에도 사람이 많다. 입구에 표를 받는 부스에선 간식, 음료 따위를 잔뜩 비치해 두었고, 유혹에 약한 아이들과 마음 약한 남편은 아이들 떼에 못 이겨 식당 예약을 앞두고 있음에도 커다란 달고나를 하나씩 사준다.


인생샷 명소답게 사진 찍느라 바쁜 관광객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우리도 같이 관광객의 설렘을 전염되어 가며 기대에 차 숲 속 산책로를 걸어가 볼까 하는데?

얼마못가 둘째가 사탕을 땅에 떨어뜨려 흙이 묻자 숲이 떠내려가도록 울어댄다. 달래도 진정이 안되자 남편은 입구로 다시 돌아가 같은 사탕을 또 사 온다. 그렇게 사태가 진정되나 싶었는데, 얼마 안 가 또 떨어뜨린다.- -;; 

문제의 달고나 -_-+

남편이 둘째로 쩔쩔매는 동안 두 명이라도 살자 싶어 나는 첫째와 함께 매정하게 그 둘을 손절하고 앞장서 계속 걷는다. 제주의 숲이 별로일 순 없지만, 너무 많은 곳을 봐와서인지 아니면 기대가 커서인지 평이하게 느껴졌다. 반면에 사진 스팟을 위한 인위적인 장식들이 많았는데 내가 까다로운 거지만 아무튼 내겐 그런 장치들이 더 반감 요소였다.

다 지나고 보니 사진 명소긴 하네;; (뻘쭘)

꿀꿀함을 풀러 간 숲에서 조금의 찝찝함을 얹혀서 나온 우리는 레스토랑 예약시간이 다 되어 식당으로 갔다.

과거 제주여행 때 예약이 다차 오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곳으로 기대에 가득 차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여기는 실패할 리가 없음을 자신하며 주변에 이미 음식을 먹고 있는 테이블들을 스캔하며 요리들의 비주얼에 잔뜩 기대감이 업되어 기분이가 좋아지고 있었다. :)

싄난 엄마 vs 걍 졸린 아이

그렇게 기대에 차 받은 음식은ㅎㅎㅎ

나쁘지 않았지만 메인인 스테이크는 별로였다.


그리고

사 중 뒤늦게 발견한 남편의  신발.




유명한 관광지, 유명한 식당, 유명한 날..

유명하다는 건 그곳의 가치를 얼마나 잘 대변할까.

비례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오히려 유명해서 기대치로 인해 감동이 줄어드는 곳도 있다.


그렇다. 오늘의 추석이 실패한 원인은 그 '유명'에 있다.

기념일이 주는 압박감에 평소 우리대로 주체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고,

괜히 더 특별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선택한 '유명' 코스는 모두 실패하였다.


유명해서 사람이 많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수록 깊이가 얕았다.

대중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얕은 자극을 추구하는가.

사진으로 남겨서 자랑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은 가치가 없으며,

유명하지 않으면 다녀와도 자랑할 거리가 못돼 가치가 없다.

가치 판단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외부에 있다.


우린 만족도 없이 에너지만 소진되어 빈털터리가 된 영혼으로 집에 돌아와 그냥 밤이 되길 기다렸다 때가 되어 잠이 들었다.


좀.. 이상한 추석이었다.

추석이 아니었어도 별로인 하루였다.


추석에 맞춰 유난히도 더욱 찬란한 정월 대보름

남루한 트리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별장식 같이 아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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