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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Jun 29. 2024

도서관 책을 훔쳤다.

책도둑의 변론

드디어 6일간의 긴긴 연휴가 끝났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평일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화창한 날씨와 함께 보상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향하였다.

아침 먹으러 가는 길 화창한 제주 도로

딱 아는 맛의 탱글탱글 전복버터김밥, 오징어무침, 해물라면.

근데 아는 맛만큼만 구현시키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렵다.

추상적 오리지널의 현실화.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


우리는 그렇게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오늘 꼭 가야 하는 곳이 있어 향하였다.


그곳은 바로  '서귀포 중앙 도서관'.

책 반납 기간이 다되어서인데,

반납하러 가는 손에 반납할 책은 없었다.


그렇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을 훔치기로 하였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자, 책도둑의 사연을 한번 들어보자.




책도둑의 변론


책도둑이 훔친 책의 제목은 [리스본행 야간열차].

책도둑은 처음부터 책을 훔칠 생각은 없었다.

물론 모든 걸 버리고 퇴사한 그가 우연히 그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책을 만나자 운명처럼 느낀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따로 구매할 생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밑줄을 너무 긋고 싶은 마음도 꾹 참고 포스트잇만 잔뜩 붙여 표시해 두었다가

책 반납 기간 직전에 책을 따로 구매하여 표시해 둔 페이지를 똑같이 옮기면 된다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 문제.

도서관 책은 '초판'으로 현재 판매되는 책과 구성이 다르다는 점.


도서관 책은 2007년 초판으로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러 출판사도 달라지고 그 과정에서

편집이 수정되 표현이나 페이지 구성도 조금씩 달라지게 되고, 

그대로 같은 부분을 찾아 밑줄 긋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었다. 밑줄도 엄청 그어둔 판에..


하지만 그것 또한 인내하려 하였다. 물론 많이 번거롭겠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문제.

현재 판매되는 책의 커버 디자인이 끔찍하다는 것.

보통의 책들이었다면 내용이 중요하지 커버 디자인은 대수롭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사랑하는 만큼 책의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표지를 견딜 수가 없었다.

좌: 초판 커버 / 우: 현재 판매 중인 재발행 본의 커버

이번 책 편집자는 책을 안 읽어본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면 책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그래.. 그것 또한 꾹 참고 중고를 구매하려 검색을 하는데

아무리 알아보아도 중고에 초판이 안 보인다.ㅜ

어차피 중고를 사야 한다면 같은 판으로 사 손쉽게 페이지를 옮기려 했던 마지막 최소한의 욕심마저 양보해야 하게 되자

이제 검은 마음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똑같은 중고가 아닌 중고라면, 그냥 이 책을 가지면 안 될까?'

이 책에 정을 많이 주어서인지 다른 판의 표지들이 왠지 모르게 정이 가지 않고

꼭 다른 책인 것만 같았다.

묘하게 촌스럽거나 영화 스틸컷을 표지로 한 재인쇄 판들


그렇게 좌절을 느끼며 책을 넘기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안내문구를 하나 발견하였다!


'분실 및 훼손 시 동일한 자료로 배상!!?'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래~! 배상!!!

나 배상이 너무 하고 싶다!!!




그렇게 배상하겠다는 마음으로 현금을 두둑이(?) 챙겨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괜히 떨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느낌이 이런 걸라나...?


그때 빌린 2권 중 나머지 한 권인 '정상과 비정상의 과학'책을 반납하며


"안녕하세요. 책 반납하러 왔는데요. 저... 2권 빌렸었는데 한 권은.. 분실을 해버려서.. 배상을 하려고요.

얼마.. 드리면 될까요?"


떨리는 마음으로 나름 '분실'이라는 '비의도적 변명'을 내미는 것에 양심의 찔림을 느끼며 도서관 카운터 사서에게 물어보았다.


"네? 아~ 돈으로 배상하시는 게 아니고요. 똑같은 책을 구해서 배상하시면 되세요.

직접 가지고 오셔도 되고요. 아니시면 인터넷 주문하셔서 도서관으로 택배 보내셔도 되세요. 대신에 책이 도착하는 날까지는 연체로 간주됩니다."


현금을 준비해 온 주머니 속 손에서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인터넷 주문키로 하며 정확한 주소지를 확인하고 도서관에서 나왔다.


도서관에서 나오자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매 맞기 전 긴장감이 끝나고 죗값(?)을 치르고 나온 개운함과

'얼마면 돼??' 원빈표 돈질을 하려 했다는 민망함이 섞인 웃음이었다.





거사를 끝내고 차에 돌아와 다시 보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책이 괜스레 애틋하다.

힘들게 얻은 만큼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걸까.ㅎ


그렇게 걱정거리를 덜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찜해둔 유명 정원 카페에서 초록의 싱그러움을 채웠다.


ALWAYS JOYF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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