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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샛별 Dec 26. 2021

2021년 결산

#연말정산 #올해의책 #올해의영화 

    10년 가까이 매년 연말이면 친구들과 모여서 한 해의 목표나 내년 계획을 함께 결산하곤 했다. 작년에는 브런치로 그 내용을 처음으로 공유했다. (https://brunch.co.kr/@secreties86/42) 코로나 19로 집 안에 머무르거나 나 자신에 집중할 시간이 많았던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나를 들여다볼 많은 시간이 있었다. 여러 변화의 지점이 있었고 그런 경험들 덕분에 같은 365일이 밀도 있게 채워졌다. 유독 2021년이 길게 느껴지는 건 아마 그 때문이리라.


    작년 연말에 세웠던 목표는 10가지다. 올해도 역시 예년처럼 일부는 해냈고, 몇몇은 부족하다. "두 번째 책 출판"이라는 목표 하나는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50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50편의 글이 모였고, 이게 책의 씨앗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핑계 대지 않고 업무 성과만큼이나 냉정하게 0%로 평가했다. 


    올해 나는 새로운 배움을 위해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고, 몇 년 전부터 욕심내던 헌혈유공장(은장)을 받았다. 제대로 홈바를 운영하고 싶은 마음에 도전한 조주기능사도 걱정과 달리 한 번에 합격했고, 덕분에 평소 즐기는 술의 종류가 늘었다. 목표로 삼은 건 아니었지만, 올해 타운하우스로 이사하면서 홈바 마련에 성공했는데, 그 과정에 <구해줘! 홈즈>로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새로운 경험이 많았다. 내년쯤에나 목표로 하고 싶었던 오디오 콘텐츠의 꿈도 예상하지 못한 기회로 이룰 수 있었다. (오디오 에세이 플랫폼 '나디오'와의 녹음 후기 - http://brunch.co.kr/@secreties86/60


    작년 연말정산을 하면서, 2020년을 요약한 한 문장은  "코로나 19로 많이 아쉬웠지만, 나쁘지는 않았다."였다. 2021년은 어떤 말로 요약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어제의 내게서 힌트를 얻었다.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함께 작성해 본 올해를 정리하는 100개의 질문 중 하나인 2021년 1월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에 대한 답변으로 대신하고 싶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멋진 한 해였다"




올해의 책

    

    지난해 연말정산에서 학생 때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해였다고 돌아봤는데, 올해 그 기록을 새로 썼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을 포함해 꼭 60권의 책을 읽었다. 1년 동안 읽은 책을 돌아보면서 내가 관심을 가졌던 주제를 살펴봤는데 절반도 보기 전에 이미 짐작하던 것들이 더 명확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리더십, 마케팅, 데이터, 글쓰기 따위의 주제들이 많았다. 물론 사이사이 다양한 소설과 에세이도 포함되어 있다. 전자책의 구독 서비스 덕분에 굳이 새로운 주제들을 찾아보지 않아도 매달 새로운 책을 고르고 읽는 재미가 있다. 


<팀장의 탄생> - 줄리 주오

    올해 리더 역할을 본격적으로 맡게 되면서, 많은 고민도 있었고 충분한 고민과 계획의 시간을 갖기 위한 긴 휴가도 다녀왔다. 덕분에 리더십에 대한 책이 독보적으로 2021년 내 독서목록을 차지했다. 리더십뿐만 아니라 조직문화, 화법에 대한 책도 많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고 많은 도움이 된 것이 이 책이다. 휴가 중에 읽으면서 셀 수 없이 많은 페이지와 단락을 메모했는데, 이후에 같은 팀의 리더들과 스터디도 진행해오고 있다. 신임 팀장을 맡으면서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깨우친 내용들을 진솔하게 들을 수 있다. 


<책 한번 써봅시다> - 장강명 

    2021년 첫날, 하루 만에 읽은 책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글을 써야겠다, 써야 한다로 변할 수 있도록 실행력을 주는 책이었다. 올해 꾸준히 쓰고 싶었던 (이뤄내지 못한 다짐이 됐지만) 책 리뷰의 첫 대상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secreties86/43)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새해를 맞을 수 있어서, 때로 용기가 없어지고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 싹틀 때 고개를 저으며 다시 키보드 앞에 앉을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운 책이다. 올해 유독 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일 중 하나인 책 쓰기를 다시 꼭 해보자고 응원해준다.


<파이어족이 온다> - 스콧 리킨스

    고백하자면, 나는 파이어족을 잘 몰랐다. 단어의 의미는 알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일의 의미와 목표를 오해하고 있었다.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파이어족은 '조기 은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물론 이제는 이게 과연 미디어의 탓일지 나의 편협한 시각 때문인지 의심한다) 끔찍하고 지겨운 '일'로부터의 탈출이 많은 이들이 파이어족을 부러워하는 이유라고 여겼다. 내 경우 '일'이 탈출의 대상이어야 한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외의 의미가 커서 '굳이 조기 은퇴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파이어족 인터뷰가 화제가 된 이후, 우연히 추천 알고리즘 덕분에 이 책을 만났다. 이슈가 되고 있는 삶의 방식인 만큼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내가 생각하고 초점을 맞췄던 것과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파이어족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즉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를 꿈꾼다. 그런데 그동안 그 '경제적 자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을 통한 소득 대신에 필요한 수준의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금융소득일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사회초년생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돈이 돈을 버는 파이프라인' 보다는 경제적으로 자유롭기 위한 생활 방식의 변화에 관심이 갔다. 

    책의 주인공은 금전적인 걱정 없이 소비하고, 일상을 즐기는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그가 파이어족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삶의 방식을 따르기를 결정하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파이어족에 대해 알려준다. 정말 필요한 것과 있으면 좋은 것, 남들의 시선 때문에 필요하게 된 것, 대체할 수 있거나 대체할 수 없을 만큼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을 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포기하기 아쉬운 기존의 소비 (예를 들면 BMW 차량)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할 때 주인공은 스스로 이렇게 묻는다. '이걸 유지하는 대신 은퇴가 N년 M개월 늦어진다면?' 


    책 속 주인공과 달리 나는 지금 시간을 함께 보낼 자녀도, 매일같이 날 괴롭히는 업무 스트레스도 없다. 경제적 독립을 당장 이루게 돼도 은퇴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파이어족의 삶의 방식은 일부라도 따르고 싶었다. 특히 나에게 필요한 소비와 하면 좋은 소비를 구분하는 것. 그것이 정말 내게 충분한 가치를 주는 건지 재차 질문해보는 것. 조기 은퇴를 위한 경제적 자유는 필요 없지만 소비에 매이지 않고 생활할 자유는 나에게도 필요할 것 같아서다. 





올해의 영화, 드라마, 예능


<HER> 

    개봉 당시 인생영화라는 찬사와 돈이 아까웠다는 혹평을 주위 지인들로부터 교차해서 들었던 영화다. 원래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기에 한참 미뤄두고 있다가 올해 드디어 만났다. 회사의 몇몇 구성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한 편의 글을 쓰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제안한 영화였다. 함께 보기에 낯 뜨거운 구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고른 영화라 당혹스럽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다시 사랑이라는 건 무엇인지, 상대를 사랑하게 되면 어떤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실체 없이 화면 너머로만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함께 일하는 우리 모습도 화면 뒤로 보이는 것 같았다. 함께 이야기 나눌 질문을 정하고, 또 글을 쓰면서 영화를 밀도 있게 다시 돌아봤다. 한동안 이 영화의 여운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5개월이 넘도록 영화를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 이후로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다섯 편 이상의 영화를 찾아봤다. 내가 좀처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 멀티태스킹을 포기한 채 화면에 집중하는 일에 빠지게 했던 영화여서 나에게는 더 특별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첫방을 손꼽아 기다렸고, 매주 알람까지 설정해서 본방을 시청했던 올해의 드라마. 시즌1보다 약간 느슨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힐링 드라마였다. 밴드 합주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면, 곧 끝날 것 같은 불안감에 시간을 확인했다. 축구 중계로 결방이 결정됐을 땐 올해 손에 꼽을 만큼 화를 냈다. 역시나 지난 시즌처럼 나를 많이 울렸고, 그만큼 또 웃게 했다. 예능으로 이어진 <슬기로운 산촌생활>까지 열심히 챙겨볼 정도로 팬이 됐다. 왜 그렇게 좋았을까? 글쎄, 착한 드라마여서 긴장감 없이 볼 수 있는 게 좋았던 점 아닐까. 너무 모든 게 해피엔딩이고 현실성 없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그런 현실도 꿈꾸게 되는 법이니까. 


<런닝맨>

    꼭 2021년뿐 아니라, 첫 방송 이후로 꾸준히 챙겨보던 고정 예능 프로그램. 보통 다른 일을 하면서 TV를 틀어두는 경우가 많은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 대부분 <런닝맨>을 선택한다. 지상파 월정액을 서비스로 이용하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본 것도 런닝맨이었다. 재택근무를 1년 이상 하다 보니 점심시간에도 보통 식사를 할 때 TV를 틀어두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간에 늘 런닝맨의 예전 회차들이 편성된다. TV에 스크린 타임 기능이 있었다면 독보적으로 차지했을 것 같아서 선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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